하루하루의 현실생활은 사랑이 아니라 법률과 완력, 처벌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리하여 사랑의 가능성은 처벌과 앙갚음의 윤리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며, 사랑은 하나의 이상화된 추상적 관념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서 사랑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워 사랑의 부재 현상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려 그들을 욕하고, 헐뜯는다.
우리는 때로 말만으로 사랑을 이야기할 뿐 미움으로 생활하며, 사랑의 이름으로 미움을 행한다. 그 이유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또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과 같이 갈등, 증오, 분열, 불안, 혼란, 폭력 등으로 얼룩진 시대에 ‘삼라만상은 서로를 사랑한다’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처럼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는 사랑을 더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랑이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힘차게 선언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은 꿈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사랑만이 유일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랑의 덕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 존재에 채워 놓으신 넘쳐흐르는 무한한 생명에 자유롭게 참여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내주도록 창조된 세상 만물이 지켜야 할 기본법칙이 바로 사랑이다. 우리가 생명이라고 부르는 끊임없는 창조 운동의 핵심이요, 중심이 바로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겠다는 가슴 속 깊은 곳의 사랑이 자신을 향한 것이 되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가슴 속 깊은 곳 사랑이 자신을 향한 것이 되어버리면 스스로의 내부에 감금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랑은 또한 자신의 본성과 완전히 일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에서 분리되어 나와 헛도는 것이고, 자신의 행동은 완전한 사랑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랑은 자신의 마음을 억압적 감정으로 다스리게 된다.
이러한 사랑에는 쓰디씀, 불안, 갈등, 증오, 혼란, 억압, 폭력 그리고 심지어 죽음조차 깃들어 있다. 왜냐하면 완전히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내주지 못하는 사랑에는 모두 죽음의 맛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삶이 사랑이다’는 지극히 자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진리에 눈을 뜨게 된다면 사랑은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 14)고 하셨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1코린, 13;1)고 하였다. 따라서 2017년 새해 사랑으로 살았으면 한다. 그리고 서로 평화 속에 머무르는 축복된 삶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박현배 천주교 성 라자로마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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