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전당포의 진화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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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는 물건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사금융의 일종이다. 서민들이 패물이나 고가의 저당물을 맡기고 돈을 융통할 수 있는 유용한 급전 창구로 1960~7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남의 딱한 사정을 이용해 수입을 올린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사채업자처럼 빚 독촉을 하진 않지만 물품 시세의 절반만 쳐서 돈을 빌려주고 기한내 갚지 못하면 저당 잡힌 물건을 처분해 버리는 냉혹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전당포가 사양길로 접어든 것은 1980년대, 은행 문턱이 낮아지고 신용카드가 보급되면서부터다. 자취를 감췄던 전당포가 반짝 호황을 누렸던 시절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다. 갑작스런 경기 위축으로 살림살이가 힘들어지자 명품 핸드백, 귀금속, 밍크코트 등을 들고 전당포로 나온 명품족이 크게 늘어났다.

 

명맥만 이어오던 전당포가 최근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낡은 상가에서 쇠창살 너머로 손님을 받던 음침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두드러진 변화는 전문화다. 예전엔 값 나가는 물건이라면 거의 받았지만 요즘은 IT 기기, 고가 브랜드 제품, 외제차 등 한 두 가지 품목에 주력하는 점포가 많아졌다.

 

대학가나 지하철역 등엔 ‘IT 전당포’가 성업 중이다. 주요 고객은 취업준비생이나 고시생, 대학생 등 돈에 쪼들리는 청춘들이다. 여기선 스마트폰ㆍ태블릿PCㆍ노트북컴퓨터ㆍ디지털카메라 등 IT 제품만 취급한다. 통상 물품 시세 50~60%를 현금으로 빌려주고 월 3% 정도 이자를 받는다. 연율로 따지면 무려 30%짜리 고금리다.

 

강남의 전당포는 고가의 명품가방이나 보석을 주로 취급한다. 정장 차림의 점원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 물건을 감정해준다. ‘마이쩐’ ‘착한전당포’ 등 전국적으로 체인망을 가진 기업형 전당포도 있다. 이들은 앱을 통한 상담, 방문 감정, 위탁판매 등을 특화시켜 영업한다.

 

고가의 중고 브랜드 제품을 비교 거래하는 인터넷 플랫폼 ‘쩐당’처럼 핀테크 형태로 발전한 곳도 있다. 고객이 물건의 사진을 이 회사 사이트에 올리면, 제휴 전당포들이 그것을 보고 각자 대출 조건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고객은 금액과 이자율을 따져보고 전당포를 선택하면 된다.

 

전당포가 느는 것은 경제 불황이 원인이다. 아무래도 경제적 약자층인 서민이나 젊은이들의 전당포 이용률이 높다. 바뀌었어도 전당포는 씁쓸하고 우울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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