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탄핵 정국에 편승해 일손 놓은 국회

역시 국회는 국민편이 아니었다.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지난 9일 임시국회를 소집해 20일 마감했지만 속빈 강정이었다. 그나마 이번 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한 안건 26건은 비쟁점 법안이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거나 촉각을 다투는 법안 등 쟁점법안들은 손도 대보지 못한 채 넘기게 됐다.

여야는 민생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약속했지만 이 같은 일은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해 12월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박근혜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름할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표결이 가결되면서부터였다. 헌법재판소 판단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정치권은 이미 조기대선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든지 오래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 잠룡들에게 줄을 서려는 국회의원들에게 민생법안이 보일 리 없다. 세불리기에 나선 대선후보들에게 줄을 댄 국회의원들에게 본연의 국회활동이 손에 잡힐 리가 만무다. 각 정당 대선후보의 계파 동원에 내몰리는 국회의원들이 20대 국회 시작과 함께 국민에게 약속했던 계파청산, 민생법안 치중, 권한 내려놓기 등은 이미 함몰된 지 오래다.

특히 이번 대선은 광역·기초 자치단체장들까지 합세해 벌이는 이전투구의 현장이 되었다. 이들 자치단체장들은 지방정부 운영과는 직접적으로 거리가 먼 안보, 병역 문제까지 거론하며 중앙정치에 편승하는 잘못된 지방자치의 모습도 그리고 있다. 중앙정치와 지방정치가 혼재돼 벌이는 이러한 기현상들은 중앙정치인 국회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20대 국회는 애초부터 글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5월 30일부터 임기가 시작된 20대 국회는 면책 특권,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고 일을 하지 않으면 세비까지 반납하겠다고 요란을 떨었다. 그러나 20대 국회가 개원 4개월이 지나도록 한 일이라고는 고작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원구성과 추가경정예산의 통과가 전부였다.

이번 국회에서는 지난 15일 활동을 종료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의 국조결과보고서도 채택했다. 호통만 있고 알맹이 없는 맹탕 국조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여야 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선거연령 18세 하향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법인세 인상,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여야 간 쟁점법안은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제 할 일을 하지 않은 이들이 세비를 반납하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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