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겠지… 빨리빨리… 나사 풀린 공사장 매년 2만여명 사상
여기에 2014년 4월 전 국민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차츰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지역에서만 해마다 산업재해로 2만여 명이 다치고 300여명 가량이 소중한 목숨을 잃고 있다. 하루 평균 1명이 사망하고, 50여 명이 다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정성균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장은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 권익보호도 중요하지만, 근로자가 일터에서 다치고 장애가 생긴다면 본인은 물론 국가의 큰 손실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열린 시무식에서 전 직원에게 강조한 첫마디였다. 고용이나 임금체불, 노사상생에 대한 주제가 아닌 가장 먼저 산업재해를 언급한 정 지청장의 인사말에 직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필사적으로 산업재해를 줄여야한다는 간절함이 베여있었던 것은 아닐까. 본보는 정유년 새해 산재없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나가고자 산업재해의 종류와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좀처럼 줄지 않는 산업재해
23일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 따르면 경기지역 산업재해자수(사망자수)는 지난 2013년 2만3천380명(355명), 2014년 2만3천39명(324명), 2015년 2만2천900명(323명)에 달한다. 지난해 10월 현재까지도 1만8천989명이 다치고 278명이 사망하는 등 매년 2만여 명이 다치고 3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수원과, 화성, 용인을 관할하는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사정이 더 좋지 않다. 경기지청 관내에서 발생한 사망자수는 지난 2013년 45명에서 2014년 35명으로 감소했다가 2015년 41명으로 증가한 뒤 지난해 51명으로 사망자수가 급증했다.
경기지청 관내의 경우 업종별로 보면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동안 모두 273명이 사망한 가운데 건설업이 절반이 넘는 145명으로 53%를 차지했고, 제조업이 90명(33%), 기타산업 38명(14%)으로 집계됐다. 규모별로는 제조업에서는 안전ㆍ보건관리자 선임의무가 없는 50명 미만에서, 건설업은 20억 원 미만 영세소규모 공사현장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기별로는 지난 6년간 7월에 28명이 사망해 가장 많았으며, 3월과 6월, 12월이 각각 27명, 8월과 11월이 각각 25명, 4월이 23명 등의 순이었다.
■산업재해 원인 분석 및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대책
이처럼 건설ㆍ제조업에서 사망사고가 잦은 것은 서비스업보다 사업장 수는 적지만, 위험요소가 많은 업종임에도 안전조치가 미흡하고, 안전작업절차를 준수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건설현장은 특성상 높은 곳에서의 고소작업이 대부분을 차지해 추락위험이 크고, 협소한 작업공간에서의 중량물 자재ㆍ건설기계ㆍ장비 사용에 따른 충돌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또 제조업은 제품 생산활동에 필수적인 위험기계ㆍ기구ㆍ설비와 화학물질 취급작업이 많아 산업재해 위험요소가 많다.
이와 함께 영세소규모 사업장은 재정적ㆍ기술적 어려움으로 효율적인 안전관리가 어려운데다 노ㆍ사 간 낮은 안전의식으로 안전조치나 안전작업 절차준수 등 예방관리가 사실상 이행되지 않는 것이 산재의 주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경기지역은 제조업ㆍ건설업 사업장이 밀집해 있어 서비스업종이 주류를 이루는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보다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지난해 ‘산재 사망사고 예방 종합대책’을 마련해 산재 예방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규모 제조업 사업주들을 대상으로 특별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지역별 건설협의체 운영을 통한 자율안전관리를 유도하고 있다. 또 추락재해예방 현수막 달아주기 운동, 안전관리 우수현장 표창 및 감독유예 등도 벌이고 있다.
박형수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산재예방지도과장은 “노동지청의 노력만으로는 재해예방에 한계가 있으므로 결국, 현장 관계자들이 얼마만큼 산업재해 예방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추락ㆍ끼임ㆍ감전ㆍ질식ㆍ폭발 등 다양한 원인의 산업재해
#지난해 12월10일 오후 1시께 화성시 동탄면의 한 초등학교 신축공사 현장. 근로자 K씨(54)가 굴삭기로 골재 포설 작업 중 굴삭기가 균형을 잃고 옆으로 넘어지는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K씨가 굴삭기와 지면 사이에 협착돼 사망했다.
사고 현장은 차량계 건설기계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끼임> #앞서 12월1일 오전 7시30분께 화성시 남양읍의 한 단독주택 신축공사 현장에서는 J씨(65)가 옥탑 지붕 방수 작업을 벌이던 중, 옥탑 지붕에서 발을 헛디뎌 3m 아래로 추락,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는 추락방지 안전난간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추락> #지난해 11월4일 오후 3시30분께 화성시 봉담읍 소재 한 회관 신축공사현장에서 굴삭기로 강관(680kg) 다발 상차 작업 중 굴삭기 운전원의 오조작으로 굴삭기가 회전하면서 강관 다발이 근로자 A씨(57)의 얼굴 부위를 가격해 A씨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노동부 조사 결과 현장에는 중량물 취급 작업계획서가 작성돼 있지 않았다.<충돌> #지난해 7월18일 낮 12시께 용인시 수지구에서 상하수도 설계업체 근로자 H씨(29)와 L씨(23)가 지하에 매설된 광역상수도 관로에서 유량계 설치작업을 벌이다 일산화탄소에 질식해 쓰러졌고, 이 중 H씨는 사망했다.
이 업체는 밀폐작업 근로자에게 송기마스크를 미지급했고, 밀폐 작업 시 일산화탄소 농도조차 측정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질식> #지난해 11월7일 오후 3시50분께 화성시 반월동의 한 빌딩 증축공사 현장에서 K씨(53)가 6.6kV 전로에서 전압측정 작업 중 감전돼 사망했다.
사망한 K씨는 절연용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다.<감전> #지난해 6월27일 오후 4시10분께 용인시 처인구의 한 소방용 기구 제조업체에서 근로자 Y씨(63ㆍ여)와 K씨(64)가 소화기에 질소가스를 주입 중 소화기 용접부위가 파열되면서 파편이 이들이 머리를 강타하는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Y씨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K씨는 부상을 입었다.
이 업체는 폭발 위험 장소에 근로자를 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폭발> 이처럼 산업재해는 추락과, 끼임, 충돌, 감전, 질식 등 다양한 원인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발생하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끼임과 폭발, 추락 재해가 많으며, 건설업에서는 추락에 의한 사망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에는 붕괴와 협착에 의한 사고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인터뷰 이효배 ㈜안전하는 사람들 대표이사
“적정 공기 확보·자율안전 실천… 정부·회사·근로자 함께 노력해야”
지난 20일 안양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효배 대표이사는 예비군복 차림에 군화를 벗어던지고 바닥에 드러누운 채 뒤엉켜 잠을 자는 예비군들의 모습이 담긴 컴퓨터 화면 속 사진을 가리켰다. 그는 “대한민국 남성들은 예비군복만 입으면 이상하게 풀어져 버립니다. 현장도 이와 똑같죠. 주변 환경, 분위기가 그만큼 중요합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이사는 좀처럼 줄지않는 산업재해의 원인으로 ▲외국인 근로자 급증 ▲협력업체의 안전조직 부재 ▲최저가 입찰, 짧은 공기, 형식적 안전시방 ▲현장 주변의 발생 민원 복잡화 등을 들었다.
그는 “이러한 원인들 외에도 최순실 사태 등 나라의 어지러운 분위기도 현장 근로자의 심리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지긋지긋한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는 현재의 건설 등 각종현장은 모든 것을 다 챙길 수는 없는 환경이라고 말하면서도 중대재해 발생 위험이 있는 공정에 대한 치밀한 계획과 집중관리, 외국인 근로자 통솔로 인한 안전사항 준수, 관리감독자의 세밀한 안전의식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자주 발생하는 사항에 대해 이를 표준화하고, 관련 자료를 보급한 뒤 치밀한 계획과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특히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특화된 안전관리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크레인 후크 자동 경보기나 타워크레인 하방카메라, 안내선ㆍ피난선과 같은 뿌리는 안전관리 제품 등이 바로 그것이다.
끝으로 이 대표이사는 “안전은 더불어 함께하는 것”이라며 “정부와 회사, 근로자가 함께 안전하게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안전한 설계, 적정공기 확보, 최저가 지양, 스스로 챙기는 자율안전 등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가 원하는 안전한 사회는 가까운 시일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대표이사는 지난 2003년 건설안전 컨설팅 전문 업체인 ㈜안전하는 사람들을 설립, 국내 굴지의 건설기업들을 대상으로 안전경영진단과 교육안전 컨설팅을 담당하며 무재해 산업사회 구현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권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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