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사회 속 여류시인… 여성의 고뇌 표현
15세에 김성립과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했다. 친정집에 옥사(獄事)가 있는 등 연속되는 불운에서 오는 고뇌를 시를 쓰며 달랬다. 그녀는 섬세한 필치로 여성 특유의 감상을 노래하여 애상적인 독특한 시세계를 이룩했다.
선조(宣祖) 22년(1589) 3월 19일 27세로 요절했다.
작품의 일부는 허균에 의해 중국에 전해져 <난설헌집>으로 간행돼 격찬을 받았다.
허난설헌의 묘는 광주시에 있다. 허난설헌의 묘는 현재의 위치에서 약 500m 우측에 있었으나 중부고속도로 개설로 1985년 현 위치로 이전됐다. 문인석을 제외한 묘비·장명등·상석·망주석·둘레석은 근래에 만들어졌다.
묘비의 비문은 국어학자 이숭녕이 지었고, 묘의 우측에는 1985년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에서 세운 시비(詩碑)가 서있다. 시비에는 허난설헌의 곡자시(哭子詩)가 새겨져 있으며 시의 대상인 두 자녀의 무덤이 난설헌묘 좌측 전면에 나란히 있다. 광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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