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왜구의 만행은 날로 심해져 1380년(우왕 6년)에는 아지발도라는 두목을 앞세운 채 삼남지방을 휩쓸었다. 그리고 이들은 정규군처럼 무장하여 남원을 점령한 후 경기 지방으로 진격했는데 황산에서 이를 무찌른 장군이 바로 이성계다.
이성계는 두목 아지발도를 화살 한 발로 이마를 명중시켜 적을 혼란에 빠뜨렸고 단숨에 이들 왜구를 전멸시켰다. 그동안 변방의 장수였던 이성계가 이를 계기로 일약 영웅이 될 수 있었으며 극성스러운 왜구를 피해 고려 수도를 개경에서 철원으로 옮기려던 계획도 백지화시켰다.
어쨌든 고려말은 이렇게 왜구가 삼남지방과 충청도 서부지방을 끊임없이 침탈하여 백성을 불안하게 했다. 1352년부터 1381년까지 충남 서산 일대에 5회에 걸쳐 왜구의 침략이 있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때 서산의 부석사에 있는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이 도둑 맞았는데, 이것이 지금껏 대마도의 ‘간논지(觀音寺)’라는 절에 안치되어 왔다. 그런데 이것을 노리고 있던 국내 문화재 전문 절도단이 2012년 10월 대마도에 잠입, 이를 훔쳐 국내로 들여오는데 까지는 성공했으나 이듬해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이에 서산 부석사는 물론 지역민들이 들고 일어나 불상을 원래 있던 부석사로 돌려달라는 운동을 벌였고 법원에도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대전지방법원 민사 12부는 지난달 26일 ‘정부는 부석사에 불상을 인도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비로소 600여 년 만에 왜구에 강탈당했던 불상이 서해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부석사 품에 안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법원 판결로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NHK 등 일본 언론에서 이를 다루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불상의 반환을 요구하는 한편 유감을 표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문화재 전문가들도 아무리 부석사 불상이라고 하더라도 ‘약탈됐을 가능성만 있지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는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거기에다 검찰은 법원 판결에 항소를 했고, 법원도 부석사의 안전시설을 이유로 당분간 문화재 보존 전문기관에 보관토록 했다.
이렇게 되니 불상이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던 부석사 측과 서산 지역민들은 몹시 허탈해 하고 있다.
이웃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까지도 부딪히는 아픔이 너무도 많다. 그 대부분의 아픔은 일방적으로 우리가 피해자일 수밖에 없고, 심지어 훔쳐간 우리의 불상까지도 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지를 당해야 하는 처지가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해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이 25억원의 사재를 털어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를 일본 골동품 상에서 구입, 국립 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일이 있는데 언론에 보도된 그의 말이 인상 깊었다.
“수월관음도는 우리가 힘이 없어서 또 우리 것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 일본에 반출된 것”이라고 한 것이다.
어디 수월관음도뿐이랴. 힘이 없어 일본 땅으로 건너간 무수한 우리 문화재들이 지금 이 순간도 현해탄 건너 고국을 그리워하리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