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년 999+1, 경기도의 思想과 思想家] 2. 경기 사상의 형성과 지리적 특성

한반도의 ‘중심’… 소통·창조정신으로 실학 꽃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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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이 천제를 지낸 강화도 마니산
■ 국호 조선에 담긴 지리적 특징과 홍익인간의 이상

우리나라는 동쪽과 서쪽, 남쪽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나 북쪽은 대륙과 이어진 반도국이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징은 동서는 좁고 남북은 길며 북동에는 산악지대가 많고 남서에는 평야지대가 많다. 아득한 옛날 추운 북방에 살던 우리 선조들은 따뜻한 곳을 찾아 남하하다가 한반도에 정착했다.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 아사달에 터를 잡고 세운 나라가 ‘조선(朝鮮)’이다. 조선이란 국호에는 단군의 원대한 꿈, 겨레의 씩씩한 기상이 담겨 있다. 나라 이름처럼 해가 뜨는 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까닭에 선조들의 성품은 밝고 몸짓은 활달했다. 

단군조선은 독자적 문화권을 형성하며 천 년의 역사를 이어갔다. 조선 앞에 고(古)를 붙여 ‘고조선’이라 부르는 것은 이성계가 건국한 근대조선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중국인들은 때로 조선을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역시 해가 뜨는 동쪽이라는 지리적 특징이 이름에 들어 있다.

“비구름 바람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

위당 정인보 선생이 지은 제헌절 노래 첫 구절이다. 위당은 “삼백 예순 남은 일이 하늘 뜻 그대로였다. 삼천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 옛 길에 새 걸음으로 발맞추리라”라며 식민지에서 해방돼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에 단군조선의 홍익사상을 담아 희망찬 새 조국을 건설하자는 염원을 노래했다. 

‘인간을 도우셨다’는 말은 곧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홍익인간은 한국사상의 원류이며 정수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보다 더 위대한 사상을 우리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처럼 단군왕검은 한반도에 조선을 세워 홍익인간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조선에 관한 역사 기록은 너무 빈약하다. 하여 조선을 세울 때 품은 홍익인간의 위대한 뜻이 얼마나 현실사회에서 실현됐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고조선의 역사와 문화는 찬란하고 당당하다. 그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조선에서 부여, 위만조선을 거친 이후에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으로 나눠졌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후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건국하면서 역사 기록도 풍성해졌다.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다가 약소국 신라가 한강을 차지하면서 삼국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이미 이때부터 한강 유역은 문명의 중심지였다.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지는 못했으나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한반도의 주인이 된 것이다. 고구려의 후예들이 건국한 발해가 한반도의 이북을 차지하고 해동성국으로 불리며 신라와 경쟁하며 번영을 누렸던 역사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신라는 후삼국으로 잠시 분열됐으나 고려로 재통합돼 조선에 역사의 바통을 넘겨주었다. 이것이 우리 겨레의 반만년 역사다.

 

세종시대에 이미 백두산에서 흘러내린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확정했다. 그러나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고구려와 발해의 터전 만주도 영토에 포함돼 있다. 달리 말해 우리의 역사는 한반도에 갇혀 있지 않다.

여지도에 표현된 조강 유역
▲ 여지도에 표현된 조강 유역
■ 극동의 심장 한반도, 한반도의 중심 경기도

한국사상은 우리 겨레가 국가라는 공동체를 이뤄 수 천 년을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집단의식의 정수이다. 한 인간의 의식은 가족을 기본 단위로 형성된 공동체의 환경에 좌우된다. 이것을 민족이나 국가로 확대하면 민족기질이나 국민성이라는 문화적 성격이 나타나게 된다. 자연환경 중에서도 지리는 한 민족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한 경기도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끼친 지리적 특성은 무엇일까. 경기도는 한반도의 가슴이라 할 수 있다. 고려의 도읍 개성과 조선의 도읍 한양을 가슴에 품고 있는 지역이다. 송악산과 임진강이 고려의 도읍 개성을 감쌌듯이 삼각산과 한강이 조선의 도읍 한양을 품었다. 이처럼 산과 강은 지리적 특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잠시 세계 지도를 펴 놓고 한반도의 위치를 가만히 살펴보자. 한반도는 대륙의 중국과 해양국 일본에 둘러싸여 있다. 지리적으로 답답한 형국이다. 그러나 지도를 거꾸로 펼쳐 놓으면 만주에서 뻗어나간 한반도가 태평양을 향해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만주에는 바다로 나가는 길이 없다. 다시 말해 만주는 한반도와 이어져야 비로소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땅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식민지로 삼킬 때 조선의 지리적 문제를 늘어 놓으며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했다. 반도라는 지리적 약점 때문에 조선은 스스로 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리적 결함을 가진 조선은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조선의 지식인 사회에 깊이 파고들었다. 그런데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논문이 등장했다. 1934년 3월 ‘조선지리소고’라는 글이 발표됐다. 이 글을 지은 이는 베를린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을 배출한 양정고보의 지리박물과 교사 김교신(1901~1945)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선은 극동의 중심이다. 심장이다”라고. 이어 그는 식민지 조선인의 사명을 이렇게 설파했다.

 

“조선 역사에 편안한 날이 없었다함은 무엇보다도 이 반도가 동양 정국의 중심인 것을 여실히 증거하는 것이다. 물러나 은둔하기에는 불안한 곳이나 나아가 활약하기에는 이만한 데가 없다. 이 반도가 위험하다 할진대 차라리 캄쟈카 반도나 그린랜드 섬의 빙하에 냉장하여 두는 수밖에 없는 백성이다. 현세적으로, 물질적으로, 정치적으로 고찰할 때 조선반도에 지리적 결함, 선천적 결함은 없는 줄로 확신한다. 

다만 문제는 그곳에 사는 백성의 소질, 담력 여하가 중요한 원인인가 한다”라며 조선인의 분발과 결단을 촉구한 뒤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동양의 온갖 고난도 이 땅에 집중되었거니와 동양에서 산출하여야 할 바 모든 고귀한 사상, 동반구의 반만년의 총량을 큰 용광로에 달여(煎) 낸 엑기스(精素)는 필연코 이 반도에서 찾아보리라” 이러한 한반도의 중심에 경기도가 있다. 그러나 70년 이어진 국토의 분단으로 이러한 이상은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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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산수도’
■ 가로막힌 이념의 장벽을 허무는 첩경

경기도의 지리적 특성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개성과 한양, 그리고 단군이 천제를 지낸 강화도를 품고 있는 경기도는 주변의 우수한 문화를 받아들였던 곳이자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냈던 한반도의 중심이다. 수용과 소통, 창조라는 경기도의 전통은 훗날 주자학에서 나라와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는 실학을 꽃피우는 바탕이 됐다.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으로 널리 알려진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은 현재진행형이다. 반만 년 전에 이러한 원대한 꿈을 품었으나 우리 겨레는 아직까지 세계사에 특별히 기여한 사상과 철학을 만들지 못했다. 세계사에 기여할 철학과 사상은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될 것이다.

 

경기도는 70년 분단의 현장이다. 그런 면에서 한강과 임진강이 하나로 합쳐 서해로 흐르는 조강(祖江)은 우리가 지리적으로 주목해야 할 곳이다. ‘할아버지의 강’ 조강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강화도 마니산과 고려의 도읍 개성, 조선의 도읍이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아우르고 있다. 이처럼 조강은 남북의 주요 산줄기와 물줄기가 한 몸으로 만나는 곳이다.

서울의 백악을 이룬 한북정맥과 개성 송악을 이룬 임진북예성남정맥이 만나는 곳이며, 남의 한강과 북의 임진강이 만나 예성강과 한 몸이 되어 서해로 흘러드는 곳이다. 지리학자 최원석은 조강의 지리적 특징을 “세 강줄기가 거대한 삼태극의 형상으로 휘돌며 역동하는 생명의 땅”이며 “한반도의 중심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강과 바다로 사통팔달하며 중국 대륙으로 거침없이 진출하는 기지”로 표현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경기도는 오랜 옛날부터 한반도 문명의 중심이며 중국을 비롯한 이웃나라와 문화를 교류했던 창구였다. 예전에 조강으로 불렸던 할아비의 강, 조강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과의 교류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지리 환경을 가진 경기도의 시대적 과제는 분단의 극복이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열린 마음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포용의 열린 태도야말로 남북으로 가로 막힌 이념의 장벽을 허무는 첩경이다. 포용과 화합은 경기도민의 시대정신이 돼야 한다.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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