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대포폰, 대포가 되다

▲
공직에 근무하고 있을 때다.

 

하루는 출입기자들과의 비공식 대화자리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기관 유치에 대한 언급을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지방뉴스에 필자가 언급한 기관유치 내용이 나의 육성과 함께 보도되었다.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기자들과 대화를 할 때는 누구도 녹음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 목소리가 그대로 나갔는가. 그 뒤에 알고 보니 요즘의 스마트폰은 그런 기능이 다 갖춰져 있어 손쉽게 녹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는 누구와 대화를 하든 ‘혹시…’하는 생각에서 말조심을 하게 됐다. 스마트폰 아니라 전화를 할 때도 이것이 녹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신경 쓰는 버릇이 생기게 된 것. 참으로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만큼 과학 문명의 발달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사생활이 노출되고 감시당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으니 행복일까, 불행일까.

 

내가 아는 한 기업인은 최근 운전기사를 내보냈다. 이유를 알고 보니 차 안에 있는 블랙박스 때문이다. 그것은 운행상황만이 아니라 차내에서 하는 전화까지도 다 녹음이 되는데 운전기사가 이것만 들고 나가면 회사가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완전 불신사회가 되어버렸다.

 

어떻게 하면 남의 비밀 대화를 엿듣는가, 어떻게 하면 그 도청을 막을 수 있는가, 이렇듯 ‘창’과 ‘방패’가 부딪치는 오늘의 정보 전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제는 사무실이나 의복 등에 도청장치를 하지 않고도 표적의 인물에 적외선 레이저를 발사하여 음파의 변화를 통해 도청을 원격 조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으며 500m 밖에서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1977년 미국 정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소위 ‘박동선 로비사건’ 때 미국 CIA가 우리 청와대를 도청했다는 것이 알려져 외교적 마찰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박정희 대통령은 중요한 대화는 정원을 거닐면서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도청기술로는 500m 밖에서도 원격 음성도청이 가능한 만큼 정원 대화도 별 도움이 안 됐을 것이다.

 

물론 전자금융 거래법에는 불법 도청에 대하여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엄격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러 분야에서 지능적인 도청이 행해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도청에 대항하여 소위 ‘대포폰’이라는 차명 휴대폰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신무기로 등장한 대포폰은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뿐 아니라 그 보안성 때문에 성매매, 마약, 도박, 보이스피싱 등 사회범죄에까지 파고들고 있으며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탄핵심판 제7차 변론에서 증인으로 나온 전 청와대 비서관이 2013년부터 2014년 12월까지 하루 2~3 차례 자신이 최순실과 대포폰으로 통화한 사실을 인정 한 것. 물론 대포폰의 사용 목적은 도청의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대포폰이 만능일까? 요즘 새롭게 ‘최순실 게이트’에서의 고영태 전화 녹취록이 등장하면서 또 하나의 뇌관이 될 수 있음을 보면 이 첨단 과학의 세대에 숨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심지어 트럼프 미 대통령까지도 껄렁한 음담패설 녹음 파일로 곤욕을 치렀음을 생각하면 누구든 자신이 뱉은 말은 날개를 달고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시 옛 속담처럼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