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자비의 근본인 평등한 마음 가지길
나의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 디자이너 한 사람이 있다. 불교수행에도 열심이지만 자기 일도 즐겁게 하고 있다. 사실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뇌종양을 앓고 있다. 하지만 항상 밝고 낙천적이어서 가까운 지인을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그가 중병에 걸린 환자라고 짐작하지 못한다.
며칠 전 그를 흥분시킨 사건이 있었다. 그가 잘 아는 어르신 중 한 분이 인품도 훌륭하고 매너도 좋은데, 정치적 견해를 달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묻지도 않은 나에게 그 분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설명했다.
며칠 후 그는 어르신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왜 만나냐고 물었더니 그분을 위로하러 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소외당해서 의기소침해 계실 것이 분명하다면서 만나서 마음을 풀어 드리겠다고 했다.
그 어르신의 정치적 입장이 순수한 애국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추호도 그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나와 의견이 다르면, 더구나 그것이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문제라면, 곧장 화를 내고 상대를 부정하는 데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지난 겨울 이후로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지만 아직 상처받은 마음들이 아물지 못하고 다시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통으로 곪아 터지고 생채기를 내면서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내 유발 상좌인 고등학생이 작곡한 곡의 음원이 발표되었다. 캐나다에서 다니는 학교에서 과제물로 제출한 곡인데, 캐나다 선생님이 듣고 크게 감동해서 녹음을 권했다고 한다.
그 중 세월호 참사를 기린 노래가 있다. 여리고 맑은 영혼의 목소리로 세월호 아이들의 넋과 유가족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음원 수익금 전액을 세월호 유가족에게 전달하겠다고 하니, 단지 금전이 아니라 그 갸륵한 마음이 반목하는 어른들보다 더 낫다.
불교에서 마음을 맑히는 여덟 가지 수행방법 중 하나가 정사(正思), 즉 바른 생각이다. 욕심 내지 말고, 화내지 말고, 남을 해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나 수긍하지만 매일 잊지 않고 행하기 어려운 수행이다. 나를 욕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화를 내고,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해칠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 거의 자연적인 본성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종교가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피붙이가 달라도, 사는 곳이 달라도, 서로 속한 문화가 달라도 남을 해치지 않으려는 마음, 남을 감싸 안는 자비의 마음으로 그 모든 차별과 차이를 넘어설 수 있다. 연민의 마음, 맑은 마음은 연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차별과 악의를 극복하는 강한 마음이다. 순수하고 맑은 영혼만 가질 수 있고, 강한 인내심을 가진 자만 보듬어 안을 수 있다. 그리고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평등한 마음이 모든 관용과 자비의 근본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어쩌다 한번,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바른 생각을 하기는 쉬어도 하루에 한 번 하기도 어렵다. 날마다 연습하자.
명법 스님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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