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수년전 영화 ‘황산벌’이 나오면서 ‘거시기’란 말이 크게 유행했는데 이때 작은 불만이 충청도 지방에서 생겼다. 불만인즉슨 ‘황산벌’은 지금 충남 논산지방인데 충청도 사투리가 나와야지 호남 사투리냐는 것이다.
물론 백제가 충청도 뿐 아니라 전라도, 경기도까지 포함하고 있었으니 병사들의 호남사투리도 나옴직하다. 이뿐만 아니라 TV 드라마에서 부잣집 가정부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배우를 등장시키는 일이 흔한데, 이때도 ‘왜 가정부는 꼭 충청도냐?’며 불평들이 나온다.
서울 사람들 머릿속에는 이처럼 지방 사람들을 ‘평가절하’하는 편견이 꽉 차있다는 오해를 산다. 또 서울에서 지방에 가는 것을 ‘내려간다’하고,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것을 ‘올라간다’고 하는 것, 이 역시 지방하대라는 것이다.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데에도 그런 의식을 느낀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풀뿌리 민주주의의 전면 부활’을 내세웠을 때 ‘풀뿌리’는 신선한 정치용어로 국민들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사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설명하는데 있어 이처럼 참여 민주주의를 나타낼 실감나는 어휘는 없다.
그러나 사무비율이 7대 3으로 중앙정부가 장악하고 있고,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 역시 8대2라는 구조 속에 지방자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주민들이 알게 되면서, ‘풀뿌리’의 이미지 역시 가뭄에 시들어버린 잡초의 뿌리로 전락했다.
도대체 8대 2의 돈주머니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것도 모자라 복지정책의 소요예산 상당 부분을 지방정부로 떠넘기게 되니 지방의 재정자립도는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2016년 우리 지방재정 자립도가 35.9%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래도 처음 지방자치가 실시되던 1995년에는 62.5%에 이르던 자립도가 2013년에는 52.3%로 줄어들고, 이제 35.9%까지 떨어졌으니 ‘풀뿌리’ 예찬론은 창고 속에 들어가야 할 형편. 이렇게 허약한 지방의 재정자립도는 서울, 울산 등 몇 곳을 빼고는 중앙정부가 움켜쥐고 있는 곳간에 목을 매야할 지경인 것이다.
가령 어느 지방 정부가 지역에 맞는 사업을 하려해도 중앙정부로부터 매칭 펀드(matching fund)의 규제를 받는다. 중앙에서 소요예산을 주되, 일부는 지방예산에서 확보하여 사업을 추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의 가난한 재정으로는 그 일부도 감당을 못해 중앙에서 주겠다는 돈을 ‘울며 겨자 먹기’로 되돌려주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가운데 이번 대선에 나서려는 사람들이 지방자치의 발전을 내세우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이제는 대통령뿐 아니라 중앙정부의 권한도 지방정부에 분산시켜야 할 시점에 와있다.
7대 3의 사무비율, 8대 2의 국세지방세 비율, 그리고 중앙에서 틀어쥐고 있는 인사권 등…. 풀뿌리를 고사시키는 국가권력구조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다. 어떤 대선주자는 아예 이번 기회에 이와 같은 지방분권 강화를 헌법에 명시하자는 주장도 하고 있다.
건강한 정치발전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방을 가볍게 여기는 중앙 중심의 의식부터 바꿔야 한다.
변평섭 세종시 전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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