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활은 건축물과 그것들을 품고 있는 도시공간을 떠나서는 거의 이뤄지기 힘들다. 우리는 건축물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건축물의 어느 부분을 제일 먼저 생각할까? 아마도 높이 솟은 주상복합 아파트의 화려한 외관이나 따뜻한 거실, 햇빛 잘 드는 사무 공간, 공장건물의 높은 천장, 손님의 동선을 유도하는 쇼핑몰의 통로 등이 아닐까?
그러나 ‘계단’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계단은 목적지로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계단의 운명은 우울하다. 점차 훨씬 편리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에게 기능을 넘겨주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아예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근대 이후 건축물의 발달은 계단 없이는 상상하기 힘들다. 계단이 없었다면 단층건물을 복층화하고 초고층화하는 과정이 가능했을까? 인류가 만들어낸 여러 발명품 중 계단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계단의 사전적 의미는 ‘높이가 서로 다른 공간들 사이를 밟고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는 건축물의 일부분’이다. 현학적으로 정의한다면 추락을 미분화하고 등정을 적분함으로써 중력을 이겨내고 이동의 편의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계단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높이와 폭, 기울기의 기준을 수정해 왔다. 사람들의 신체구조와 운동방식에 적합하게 변화해왔고 그 결과물로서 계단의 설치기준은 법적인 기준으로 정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계단참의 설치다. 대개 열 걸음에서 열다섯 걸음 정도 계단을 오르다 보면 두발 자욱 넓이의 평평한 바닥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단참’이다.
계단은 공간이동의 편리함을 주었으나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한다. 내려오다 헛디디거나, 급하게 오르다 걸리거나 하는 경험을 한두 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사소한 실수 같지만 결과는 가볍지 않다. 아이들이나 노인들에게는 계단이 공포심을 주기도 한다.
건축가들은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했고, 그 결과가 계단참이다. 계단의 3요소인 높이, 폭, 기울기에 계단참을 더했다. 오르다 잠깐 쉬는 동안 다리 근육이 저절로 회복되고, 내려오다 숨이 잦아들고 관절이 피로를 회복하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한 걸음의 휴식을 주는 계단참에 담긴 물리적인 이유에 덧붙여, 우리 삶에서 그 찰나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인생의 대부분을 건물에서 보내는 현대인에게 계단참이 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도시근교 등산로에 설치된 계단에 관해 말하고 싶다. 자연을 보호하고, 등산객들의 편리를 위한 계단이 보폭과 맞지 않는 등 설치 기준이 정밀하지 않아 불편함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산행을 하는 주된 연령층인 40~60대의 발목 건강을 계단이 책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계단의 안전성을 더욱 고려했으면 좋겠다.
김수종 LH인천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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