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JP의 침묵

▲
정부 수립 후 초대 상공부 장관이 된 임영신(任永信)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관이기도 하다. 그는 1년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나 1949년 경북 안동에서 실시된 국회의원 출마하여 당선됐다.

 

임영신은 충남 금산 출신. 금산은 5ㆍ16후 충남에 편입되었지만 그때는 전라북도였다. 이렇듯 호남 사람이면서도 TK의 중심이라고 할 경상도 안동에서 당선된 것이다.

 

임영신 뿐 아니라 민주당 정권 때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지낸 조재천(曺在千) 역시 전라남도 광양 출신인데도 1954년 대구에서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제3대 민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그러니까 이때만 해도 망국적인 지역 감정이 없었다는 뜻이다. 지역감정은 소위 ‘3金 정치’를 거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고 호남, 영남, 충청에 기반을 둔 정당들은 이렇듯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성역으로 만들었다. 가령 충청도에서 ‘맹주’ 역할을 한 JP(金鍾泌)는 DJ(金大中)의 호남, YS(金泳三)의 영남처럼 한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를 두고 신라·백제 때와 비교하여 ‘후3국 시대’라고도 했고 ‘황금 분할’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JP가 만들었던 신민주공화당이나 자민련의 공천만 받으면 충청도에서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호남, 영남도 거의 비슷했고 투표 때마다 몰표가 쏟아졌던 것.

그런데 최근 들어 대구에서 민주당의 김부겸 의원이, 전라남도 순천에서 새누리당(지금은 자유한국당) 김정현 의원이 끈질긴 도전 끝에 국회에 진출했다. 콘크리트 바닥과 같이 단단한 지역감정을 뚫는 정치 실험에서 성공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정치 실험은 이제 상당한 진화를 보이고 있다. JP가 이 뜨거운 대선 정국에서도 침묵하고 있는 것이 그 증표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만 해도 JP의 휠체어를 밀고 TV 화면에 함께 하는 사진이 나오도록 눈치를 보던 후보들이 충청도에 많았다.

 

더 가까이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귀국하자마자 JP를 방문했고, JP는 반기문씨를 적극 도울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때만 해도 ‘충청 대망론’의 분위기에서 ‘반기문총장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었고, 충청도 맹주로 칭하는 JP의 뜨거운 지원은 날개를 달아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반총장의 대선 포기 선언이 나오자 JP의 역할은 그것으로 끝났다. 물론 그 후에도 몇몇 대선 후보들이 청구동을 찾았지만 그건 의례적인 것이었고, 뜨거운 에너지를 헤집어 찾기는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지역주의에 재미를 보던 선거 풍토가 퇴장하고 있는 것이다.

 

홍준표, 유승민 후보 등, 그들 정치기반이었던 TK에서 안철수, 문재인 후보에게 밀려 1, 2위 양강구도를 빼앗기는 여론조사도 그렇다. 더불어민주당 경선 때 충남지사 안희정 후보가 그의 안방 충청도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1등의 자리를 내준 것 역시 이제 지역 대결의 시대가 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현상을 무시하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여론이 치고 올라오자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안희정지사의 차출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안지사가 지사직을 그만두고 문재인 캠프로 간다고 해서 얼마나 충청민심을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역효과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충남 공주 출신인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 이번 대선에 출마를 선언했다가 슬그머니 포기한 것 역시 충청도에서조차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 정치문화도 갈등과 좌절을 되풀이하면서 점점 진화하고 있는 것이며, 이번 5.9 대선은 그래서 안보와 경제를 책임질 진정한 지도자를 선택하는 ‘고뇌의 장’이 될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