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국회 권력’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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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의 생명력은 참으로 끈질기다.

 

지금 1970~80대 고령층이 어렸을 때 가장 먹고 싶은 것이 짜장면이었는데, 그 보릿고개 세대를 뛰어넘은 40~50대들도, 그리고 풍요의 세대라 할 20대들에게까지도 여전히 짜장면은 인기다.

 

왜 그럴까?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자식들 손을 잡고 식당을 드나들며 짜장면을 먹게 했기 때문이다. 맛의 이어받기가 계속된 것.

 

우리의 남다른 저항정신도 짜장면처럼 우리나라의 역사적 상황이 낳은 독특한 DNA로 형성되었다. 가까이 일제 강점기는 언론, 문화 모든 분야에서 ‘저항’ 그것이 늘 밑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또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공동선이었고 가치였다.

 

자유당 장기집권과 4ㆍ19, 그리고 이어지는 군부정권에 대한 저항과 6월 민주항쟁… 이렇게 켜켜이 쌓인 한국의 특수한 정치상황은 ‘저항’을 큰 자산으로 키워왔다.

 

그러다 보니 야당은 반대를 해야 하고, 어느 분야든 반대의 목소리가 큰 사람, 큰 조직이 위대하게 보이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그래서 2013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을 지낸 다니엘 튜더 기자는 그의 한 저서에서 한국의 야당은 60~70년대 ‘반대’가 몸에 배어있다고 했다.

 

특히 짜장면 맛이 그대로 옮겨지듯, 우리의 그 저항의 정치 DNA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곳이 국회다.

 

당장 국회는 신임 총리의 인준과 장관들의 청문회가 계속될 것이며, 과거 많은 총리 후보자들을 무참히 낙마시킨 전통(?)이 이번에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또 새 대통령의 정책 추진들이 국회에서 어떻게 다루어질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오래전 국회의장을 지냈던 K씨와 함께 몇몇 지인들이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런 가운데 자연히 대화는 ‘미래 권력’으로 흘렀다. 누군가는 검찰권력을 이야기했고, 언론 권력, 노동권력, 시민단체 권력 등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국회의장 출신의 K씨는 분명한 어조로 ‘국회 권력’을 주장했다. 과연 미래 권력의 핵심은 국회 권력일까?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국회 권력’의 의미를 실감할 것 같다. 2012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선진화법’을 추진, 여당의 독주를 막고자 했다. 정말 그렇게 하여 만든 선진화법은 정부 여당을 견제하는 효과를 보았지만 정작 자신이 대통령이 되자 선진화법은 자기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정부조직법 개정 등 자신의 정책 구상이 번번이 벽에 부닥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선진화법을 탓하며 긴 한숨을 쉬었다. 비로소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국회권력의 실체를 느낀 것이다.

이제 막 출범한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도 피할 수 없이 ‘국회권력’의 실체와 함께 갈 수밖에 없음을 인식할 것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의 의석 수는 과반에 훨씬 못 미치는 119석. 선진화법에 구애받지 않고 소신껏 정책을 펴나가는데 필요한 180석에는 61석이 부족하고, 과반수에는 30여 석이 부족하다.

제1야당이 된 자유한국당 역시 107석으로 법안 처리를 독자적으로 추진하려면 다른 야당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정말 절묘한 국회의석 구조를 이루어 누구든 홀로서기가 불가능한 우리 국회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협치와 통합.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끼리 손을 잡는 것은 협치와 통합이 아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손을 잡는 것이 협치요, 통합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고도의 정치테크닉이 필요하고 열린 마음, 열린 정치가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만은 ‘국회선진화법’을 원망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협치와 통합의 정치가 실현되길 기대한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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