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빛낸 역사인물] 김홍도(1745년~미상)

다방면서 재능 발휘한 조선시대 최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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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는 당대의 감식가이며 문인화가인 강세황의 천거로 도화서화원이 됐다. 강세황의 지도 아래 화격을 높이는 동시에, 29세인 1773년에는 영조의 어진과 왕세자(뒤의 정조)의 초상을 그렸다. 명나라 문인화가 이유방의 호를 따라 ‘단원’이라 자호했다. 

1788년에는 왕명으로 금강산 등 영동 일대를 기행하며 그곳의 명승지를 그려 바쳤다. 정조의 어진 원유관본(遠遊冠本)을 그릴 때 참여했다. 그 공으로 충청도연풍 현감에 임명돼 1795년까지 봉직했다. 현감 퇴임 후 만년에는 병고와 가난이 겹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여생을 마쳤다.

 

조희룡의 <호산외기>와 홍백화의 발문에 의하면, 그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또한 도량이 넓고 성격이 활달해서 마치 신선과 같았다 한다. 그는 산수·도석 인물·풍속·화조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당대부터 이름을 크게 떨쳤다.

50세 이전에는 중국적인 정형 산수를, 이후에는 한국 정서가 있는 실경을 소재로 하는 진경산수를 즐겨 그렸다. 정조는 “회사(繪事)에 속하는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주장하게 했다”고 할 만큼 총애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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