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에 오르게 되면 누구나 많이 들어온 소리다. 그렇게 천안은 한반도에 호두과자를 퍼뜨린 모태다. 왜 그렇게 됐을까?
그 사연이 매우 역설적이다. 천안시 광덕면에 있는 유서 깊은 광덕사에는 천연기념물 398호로 지정받은 호두나무가 있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첫 호두나무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심은 사람이 고려말 대표적인 간신의 하나로 꼽히는 유청신. 비천한 몸으로 출세를 하여 중국 원나라와 고려의 관계를 주무르며, 충렬왕과 충선왕의 피나는 부자(父子) 권력 싸움에서도 첨의정승에까지 오르는 등,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하였다.
그러나 그는 오잠과 함께 1313년, 충숙왕이 방탕한데다 눈멀고 귀머거리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지 못한다고 원에 모함, 폐위시킬 것을 청원했다. 뿐만아니라 고려를 중국 원나라의 일개 성(省)으로 격하시킬 것을 주장했다.
이완용 등 친일파들이 조선의 일본 통치를 주장한 것과 같다. 하지만 원나라의 고려 직접 통치는 고려의 애국적인 충신들로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혀 좌절되고 말았다. 결국 그는 고려에 돌아오지 못하고 원에서 1329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고려에 해를 끼치긴 했으나 뛰어난 공적을 하나 남겼으니 그것이 바로 원나라와 한창 왕래를 하던 1290년 호두나무 묘목과 열매를 가져다 이 땅에 심은 것이다. 그래서 천안시는 ‘유청신선생 호두나무 시식지’라는 비석을 이곳에 세우고 그가 남긴 공적을 기리고 있다.
어쨌든 ‘고려 간신전’에 이름을 올린 유청신이지만 그의 손자 유탁(柳濯)에 이르러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할아버지와는 달리 손자 유탁은 대표적인 고려 충신으로 이름이 오르기 때문이다.
유탁은 벼슬이 영의정에 오를 만큼 모든 것이 출중했는데 공민왕이 죽은 노국공주를 너무 못잊어 화려하게 정전을 지으려는 것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공민왕과 추종자들이 계속 회유했지만 끝내 뜻을 굽히지 않자 처형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역사는 한 뿌리에서 간신과 충신이 나오는 보기드문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
그러면 무엇이 할아버지를 간신으로 만들고 손자는 충신이 되게 했을까? 할아버지 유청신도 충숙왕을 폐위시키려 할 때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다. 왕이 정사(政事)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사냥이나 즐기며 방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원나라가 고려를 직접 통치하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밑바닥에는 나름대로 백성을 위한다는 변명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이완용도 어차피 열강에 먹힐 썩은 고목같은 조선이라면 일본에 먹히는 것이 조선 개화에 좋을 것이라고 오판했다. 그러니까 간신도 자신이 간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름대로 국가를 위하여 헌신했다고 ‘자기합리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파적 이익, 몸담은 당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국가를 위하는 것이라고 착각도 하고, 그래서 ‘정치공학적 기술자’가 빛을 보게 된다.
요즘 새 대통령이 국정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면서 청와대를 비롯 정부 각료 등, 새 진용을 갖추기 시작했고 모든 정당들도 대선 후의 파동을 가라앉히며 새 판을 짜고 있다. 그 판을 짜는데는 정부도, 정당도 문제는 역시 사람이다. 문뜩 공자가 한 말이 떠오른다. 하루는 증자가 어떻게 해야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다.
“바른 말하는 신하 일곱명만 있으면 아무리 무도해도 천하를 잃지 않는다.”
머리좋은 책략가들은 많은데 바른말하는 7명의 충신이 있는지 모르겠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비극적 말로를 보면 ‘정신칠인’의 뜻을 알 것 같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