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연구 힘쓴 한글학자 겸 독립운동가
1925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영생고등여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1927년 5월 미국으로 유학해 우스터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과 과정을 마친 다음, 1931년 영생고등여학교에서 다시 교편을 잡았다.
1941년 영생고등여학교를 떠나 조선어학회(지금의 한글학회)에서 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맡아보다가, 1942년 9월에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홍원경찰서에 구금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아 함흥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조선어학회로 돌아와 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다시 시작하는 한편, 연희대학·중앙대학·홍익대학·동국대학 등에서 국어학 강의를 맡았다. 1950년 6·25로 고향에서 피신했고,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갔다가 1952년 서울로 돌아와 <큰사전> 속간을 위해 전념하다가 같은 해 11월 교통사고로 죽었다. 1962년에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단장(單章)이 추서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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