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생계형 프리터족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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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직업 없이 돈이 필요할 때만 한시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프리터족(族)이라 한다. 프리터(freeter)는 프리(free)와 아르바이트(Arbeit)의 합성어로 일본에서 처음 생겨난 개념이다. 프리터란 말이 등장한 1987년에는 기업에 고용돼 일하기보다 알바로 돈을 벌면서 남는 시간에 자신의 인생을 즐기려는 청년들의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장기불황이 시작되면서는 불안정 고용의 대명사,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용어가 됐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부터 프리터족이 급증했다. 프리터족이 늘어난데는 높은 최저임금이 영향을 미쳤다. 현재 일본의 전국 평균 시간당 최저임금은 823엔(약 8천348원).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6천470원)보다 1천878원 많다. 이후 일본의 경제사정은 나아졌지만 청년들이 여전히 취업을 포기하면서 노동력 부족 사태까지 불러왔다. 일본 정부가 2000년대 중반부터 프리터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뒤늦은 대응으로 해결이 잘 안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프리터족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예측이다.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천60원 오른 7천530원으로 결정된데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된다. 그땐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일하면(유급 주휴수당을 포함) 월 209만원을 벌 수 있다. 최저임금이 7천530원으로 오르는 내년부터는 같은 조건에서 월 157만원 정도 벌 수 있다. 9급 공무원 1호봉 월급 152만880원(직급 보조비 12만5000원 포함·각종 수당은 제외)보다 많다. 그러니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하루 종일 주민센터에 앉아 민원 업무를 하는 것보다 알바하고 사는 게 낫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우리나라 청년(만 15~29세) 실업률은 지난 4월 기준 11.2%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저임금이 오르고 취업난이 더 극심해지면,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 자체를 직업으로 갖는 젊은이들이 늘 것이다. 예전엔 알바를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임시로 하는 일로 여겼으나, 일본처럼 알바를 하며 보다 자유롭게 사는 ‘자발적’ 프리터족이 증가하게 되리라 본다.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프리터 시대’가 열리게 되면 고용시장뿐 아니라 사회·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알바를 전전하며 결혼을 미루는 만혼(晩婚) 현상이 나타나고, 이는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산업현장의 노동력 부족 현상도 나타날 것이다. 일본과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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