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국가재정법> 제89조를 보면, 추경예산안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한 경우 또는 남북관계의 변화 등 대 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한 경우 등의 기준에 한정하여 편성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현행법상 편성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추경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즉 법적인 요건에 맞지 않는 것인데, 그동안 우리나라는 추경예산안을 정치적 이벤트 형식으로 다뤄온 것이 사실이다.
법적 편성기준 문제뿐만 아니라 정부는 ‘예산의 원칙’마저도 준수하지 않았다. <국가재정법> 제16조는 ‘정부가 예산의 편성 및 집행에 있어서 재정건전성 확보와 국민부담의 최소화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하며, 예산과정에의 국민 참여를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많은 논란이 됐던 공무원 증원의 경우 추경예산안대로라면 향후 미래세대까지 막대한 혈세가 투입될 수밖에 없으며, 특히 지방공무원 확충의 경우 지자체 재정건전성이 악화일로를 걷게 하는 문제였다.
국세 및 지방세 비율 조정 등 재정 분권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과 향후 정부가 교부세 및 교부금을 지자체에 충분히 지급하지 않을 경우를 고려하면, 상당히 위험한 발상에 의한 예산안이었다. 무엇보다 지방자치시대에서 지방공무원 채용권한은 당연히 해당 지자체에 있는데,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지방공무원을 확대하라’는 것은 상식과 이치에도 맞지 않으며, 지방분권을 국정과제로 삼은 새 정부가 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국민 참여는 어떠한가. 추경예산안 편성을 앞두고 전 국민적인 의견수렴을 한 것도 아니었고, 사전에 야당과 추경예산안 편성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과정도 없었다. 새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각 중앙행정기관이 추경예산안 내역을 서둘러 뽑느라 법적 기준에도 맞지 않는 ‘청사 LED 조명 교체사업’ 등을 포함하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만 있었을 뿐이다.
추경예산안의 이름도 문제였다. ‘일자리 창출 추경예산안’이라는 제목은 <국가재정법> 제16조 제4호의 ‘예산과정 투명성’을 저해하는 것이다. ‘창출’의 사전적 의미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생각하여 지어내거나 만들어 냄’이다. 공무원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것은 분명한 어폐가 있다. ‘창출’에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생각하여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와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공무원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만 있으면 정부가 손쉽게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창출’은 민간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질 때 써야 맞는 말이기 때문에 ‘공무원 일자리’는 ‘창출’이 아니고 ‘일자리 나누기 혹은 단순 늘리기’에 불과하다. 이처럼 공무원 일자리를 두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은 추경예산안의 투명성을 저해하여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물론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추경예산안일지라도 국회에 계속 계류시킬 수는 없어 본 의원은 바른정당 간사로서 여당과 야당을 서로 조율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 힘들었던 추경예산안 통과를 잘 이끌어냈다고 생각한다.
또한 추경예산안 심사 이전에 전국 초중고 학교의 90%가 미세먼지 공기청정기가 없다는 사실을 발표한 바 있는데, 학부모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여 이번 추경예산안에 공기청정기 설치사업 예산으로 87억 원을 반영시킨 것도 또 하나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2017년도 추경예산안’ 통과 일련의 과정은 앞으로 되풀이되어선 안 될 것이다. 추경예산안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정부의 행태 또한 개선되어야 한다. 오직 국민이 정한 법률에 의하여 추경예산안을 편성 및 집행해야 한다. 정부는 국회가 제정한 <국가재정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길 바란다. 그게 당장 어렵다면 법률을 준수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만이라도 국민에게 보이길 촉구한다.
홍철호 국회의원(김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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