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납금 맞추려 쪽잠 자고 식사 걸러… 버스보다 더 ‘열악’
사납금을 맞추기 위해 쪽잠을 자 가며 운행하는 것은 물론 열흘에 한 번꼴로 있는 휴일에도 반강제적으로 차에 올라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최근 택시 면허 지원자 수도 10년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났고, 결국 운전기사가 줄어들면서 기존 운전기사들의 운행량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본보는 택시기사들의 고충과 택시회사의 갑질, 그리고 이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시흥시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A씨(52)는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늦은 점심을 먹는다. 기사식당에 들어가 항상 먹던 7천 원짜리 ‘제육볶음’을 시킨다.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지만, 제일 빨리 나오기 때문에 A씨의 ‘고정 점심메뉴’다. 5분 만에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끝내고 다시 차에 올라탄 A씨는 ‘식곤증’이 몰려 오지만 한숨 잘 여유조차 없다.
이날 책임져야 할 사납금을 다 못 맞춰서다. A씨가 회사에 내야 하는 사납금은 하루 11만 5천 원으로, 다른 기사들보다 3만 원가량 높다. 12시간씩 교대 근무를 하는 동료와 달리 A씨는 차 1대를 혼자 맡아 운전해야 하는 1인1차제 기사이기 때문이다.
오후 5시가 돼서야 가까스로 사납금을 맞춘 A씨는 저녁식사는 당연한 듯 거른다. 이제부터 버는 돈이 온전한 A씨의 수입이기 때문에 쉴 틈이 없다. 밤 9시가 넘어서까지 운전대를 잡은 A씨가 손에 쥔 돈은 20만 원 남짓. 사납금을 내고 택시 가스를 충전하고 나면 실제로 A씨에게 떨어지는 돈은 5~6만 원에 불과하다. 밤 11시쯤 잠이 든 A씨는 새벽 3시에 일어나 다시 집을 나선다. A씨는 “한번씩 졸음운전을 할 때도 있고, 주변에서는 과로로 병원에 입원하는 기사들도 많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법인 택시기사들 중 ‘1인1차제’에 속박된 기사들이 시내 곳곳에서 위험천만한 운전을 하고 있다. 더욱이 열악한 여건에 운전대를 놓는 기사들까지 증가하면서 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31일 도내 택시업계와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에 따르면 경기도 내 194개 운수업체 가운데 대다수가 1인1차제를 혼합해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체 차량의 절반가량이 1인1차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인1차제는 기사 한 명이 택시 한 대를 전담해 한 달에 24~26일가량 근무하는 방식이다.
특히 수원시의 경우 27개 택시회사가 모두 1인1차제를 혼합 적용하고 있다. 2명분의 연봉과 수당, 퇴직금을 한 명만 주면 되기 때문에 택시회사들은 1인1차제를 선호한다.
하지만 이 같은 1인1차제는 승객들의 안전을 크게 위협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이 발표한 ‘운전자수에 의한 교통사고율 비교’ 결과에 따르면 법인택시의 사고 비율은 2001년 11.1%에서 2014년 14.5%로 크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법인택시기사수는 16만6천921명에서 11만7천6명으로 5만 명이 넘게 줄었다. 기사 수가 줄면서 1인1차제의 비율이 높아졌고, 이로 인해 교통사고 비율 또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김성한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사무처장은 “1인1차제가 무리한 운전을 야기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제기된 내용”이라며 “택시기사들의 근무시간은 12시간 미만으로 정해 놓고, 이를 어길 시 행정처분을 내리는 서울과 목포 사례를 참고해 택시기사들의 근무 여건 개선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유병돈ㆍ수습 최수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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