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누린 국민 관심과 사랑, 후배에 돌려 줄 것”
Q 7월 말 비영리 법인인 ‘현정화 스포츠클럽’을 설립했다. 이 재단을 설립하게 된 배경은.
A 스포츠 관련사업을 하고 있는 마이핏 범효진 대표이사와 평소 친분이 있었는데, 어느날 만나서 얘기하던 중에 재단설립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게 됐다. 은퇴이후 10여년 간 대표팀 지도자로 일해오면서 더 늦기전에 스포츠 꿈나무를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힘써야겠다고 생각해왔다. 이러한 뜻을 범 대표에게 내비치자 평소 추진력이 빠른 그가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통합 운영되고 있는 현 시점이 재단을 설립해 운영할 적기라는데 범 대표와 의견을 같이했다.
Q 앞으로 재단에서는 어떤 사업과 활동을 펼칠 계획인가.
A 우선, 올해 계획은 10~12월 전국 6개 지역에서 탁구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24일 CTS기독교방송과 MOU를 맺었으며, 이 대회서 나오는 수익금을 탁구 꿈나무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려고 생각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탁구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종목들까지도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범 이사장이 평소 인맥이 넓은데 이를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구상중에 있다. 탁구교실이나 아카데미 등 다각도로 사업을 논의하고 있지만 재단이 설립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Q 재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정의 재원과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한데, 재원조달과 인적 구성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A 대한탁구협회에 30년간 몸담은 뒤 은퇴한 분께 도움을 요청해 사무국장으로 모셔왔다. 탁구와 관련된 제반의 행정업무는 그분께서 맡아주실 계획이다. 재단을 설립하면서 나와 범 이사장이 주변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많이 하고 있다. 한동안은 재단이 자리잡기까지 살림을 꾸려 나가기 위해 지인들의 후원이나 기부를 통해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 탁구쪽에 내가 가진 인맥과 사업가로서 범 이사장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재단을 키워나갈 생각이다.
Q 현 감독께서 이사장을 맡지 않고, 본인은 클럽 회장을 맡으셨다. 재단의 운영 방식과 범효진 이사장의 역할은.
A 앞서 말했듯이 범 이사장님이 인적네트워크가 많아 그분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나는 재단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렛츠런파크 감독과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으로도 일하고 있어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범 이사장님이 재단에 대해서는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감사하게도 여러 방면으로 우리 재단을 도와주시겠다는 분들도 많이 나타나셔서 큰 힘이 된다. 또한 우리 재단이 사단법인이 됐기 때문에 기부나 후원을 하게 되면 세액공제 등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앞으로 후원과 참여가 더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그동안 국내에서는 홍명보, 최경주, 장미란, 양준혁 등 여러 스타선수 출신들이 공익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들 재단의 운영을 벤치마킹하거나 별도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사례는.
A 홍명보 재단이 롤모델이다. 홍명보 재단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도 재단을 설립한다면 저렇게 운영하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오래전부터 아이들한테 꿈을 주고 싶었다. 요즘 아이들이 환경이 좋아지면서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한데 운동을 통해 꿈을 심어주면 극기의 힘과 근성이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학창시절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나를 강하게 했기 때문에 목표가 뚜렷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아이들을 찾아 꼭 도움을 주고 싶다. 대표팀에서 선수들만 지도하면서 무언가 아쉬움을 느꼈다. 원석을 발굴하고 어릴 때부터 하나하나 가르치며 선수로 키워내고 싶다.
Q 현 감독은 한국 여자탁구의 한 시대를 풍미한 ‘탁구여왕’으로 국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특히, 세계선수권에서 단식과 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을 모두 우승한 유일한 한국선수로 남아있는데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A 먼저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이 기억에 남는다. 5천여 명의 관중 속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것은 선수로서 최고의 행운이 아닌가. 또한 그때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가 너무 소중했고, 역사적인 대회였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시합을 뛰어보니 나도 모르게 7천만의 기운이 느껴졌고, 이것이 곧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21살이던 내가 당시 우승소감을 “이것이 바로 통일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밖에 1993년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식 우승을 한 것도 소중했던 경험이다.
Q 선수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뒤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를 거쳐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람도 있고, 어려움도 있을텐데.
A 선수 때는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왔지만, 지도자와 행정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이 크다. 선수와 지도자로만 오랜시간 활동해오면서 행정가로서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해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내 탁구 인생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이번 재단 설립은 진정 내가 원했던 것이며 또다른 ‘제3의 탁구인생’이라 생각한다.
Q 후배 겸 제자인 유승민이 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된 이후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A 유승민은 선수시절이나 지도자를 할 때나 늘 총명하고 리더쉽을 갖췄으며, 성취감이 있는 친구였다. 무엇보다 행정가로서 유승민이 부럽다. 나는 국가대표 선수생활 10년, 대표팀 코치와 감독으로 10년 등 총 20년을 보내면서 행정가로서의 꿈에 투자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승민이가 협회에서도 많이 도와줬지만 나는 혼자만의 힘으로 하다보니까 그런 길이 있는 줄도 잘 몰랐다. 자기계발에 조금 더 몰두했다면 나도 행정가로서 꿈을 더 빨리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평소 승민이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등 많이 의지하고 있으며, 내가 이루지 못한 부분을 이뤄줘서 고맙고 대견하다.
Q 평생 탁구인으로서 앞으로의 목표와 바램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들려달라.
A 나는 죽는 순간까지도 탁구인일 것이다. 40년을 탁구만 해왔지만 탁구를 빼면 내 인생은 없다. 탁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후배들한테 돌려주고, 앞서가는 여성 스포츠인의 한사람으로 다른 종목을 포함한 여성 후배 선수들을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이번에 설립한 재단이 앞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주변에서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리며,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 현정화를 기억해주시는 국민 한분 한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좋은 모습으로 계속 기억될 수 있도록 지도자나 행정가로서 더욱 노력하겠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ㆍ정리=김광호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