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방공 대피훈련 현장 가보니] 통제 안 따르고 멋대로 운전… 北 위협 속 여실히 드러난 안보불감

훈련 진행 여부 모르는 시민도 많아
행안부 “국민 참여 유도 대책 마련”

북한의 괌 포위사격 위협 등 한반도 위기상황을 가정한 을지연습 민방공 대피 훈련이 시민들의 외면 속에 구색갖추기에 급급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관계 당국과 시민들의 ‘안일한 안보의식’이 투영된 대한민국 안보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23일 오후 2시께 용인시 기흥구 중동 D 골프연습장에는 적의 공습경보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손님들은 사이렌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골프 연습을 하는 데 열중했다. 일부 손님들은 연습장 주변에 널브러진 골프공을 태연하게 정리하는가 하면 두 귀를 손가락으로 틀어막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손님 J씨(42)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서야 민방공 대피 훈련인 줄 알았다”면서 “어차피 매년 형식적으로 치러지는 훈련인데,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해당 골프장 한 직원은 “골프장 차원에서 따로 훈련 상황에 대해 준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같은 시각, 학원가와 술집이 밀집한 의정부시 금오동 일대는 훈련 상황 시 갓길에 멈춰 있어야 할 차량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특히 시민들을 가득 태운 버스 등도 이를 무시한 채 다음 역을 향해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또 상당수 시민은 민방공 대피 훈련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민 L씨(52)는 “오늘 훈련이 진행되는지조차 몰랐다”고 답했다.

 

‘104만 고양시민이 모두 참여하는 훈련’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고양시는 기대와 달리 시민들의 외면 속에 훈련이 진행됐다. 시민 대부분은 전시 상황 시 대피해야 할 시설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또 훈련 중 시민들의 이동을 통제해야 할 공무원들은 “길을 왜 막느냐”며 반문하는 시민들의 등쌀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이같이 도내 곳곳에서 많은 시민이 관계 당국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민방공 대피 훈련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훈련을 주관한 행정안전부는 해마다 반복되는 시민들의 저조한 참여율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민들의 참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훈련을 점검하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민방공 대피 훈련 이전부터 인터넷 등 다양한 통로로 홍보 활동을 펼쳤지만, 시민들의 참여율이 저조했다”며 “공무원들이 국민 참여를 유도할 수 있지만 강제할 수 없어 내부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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