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훈련 격려차 오겠다는 정치인들… 관계기관은 ‘난색’

일일이 응대하고 사진 촬영까지… 훈련 집중도 떨어져
“실제 상황 가정한 훈련을 홍보수단 악용” 우려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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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비상사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시행하는 비상 대비 업무인 을지훈련 기간에 정치인들의 방문이 잇따르면서 관계 기관들이 일제히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격려 차원’이라는 좋은 취지의 방문이지만 매년 반복적인 방문과 기념촬영 등으로 정작 시간 소모와 훈련의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등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온다. 

더욱이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시행되는 훈련이자 최근 계속된 북한의 도발로 관계 기관이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바뀌고 있지만, 정치인들이 ‘실제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홍보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3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을지훈련은 6ㆍ25전쟁과 같은 상황을 가상, 국내 안보를 지키기 위해 공무원 등 관계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절차를 연습하는 훈련이다. 

지난 1968년 시작된 을지훈련은 전국적으로 모든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과 동원 업체 등이 참여해 매년 8월 실시하고 있으며, 올해는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4일간 진행된다. 이 기간 일선 자치단체와 경찰서, 소방서 등은 각 청사에 을지훈련 상황실을 마련하고, 실ㆍ국별 필수요원을 배치해 상황을 유지하며 24시간 근무체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훈련 기간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훈련에 방해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각 기관 입장에선 훈련에 집중해야 할 시간에 차례대로 방문하는 각 국회의원과 시ㆍ도의원들을 응대한 뒤 기념촬영까지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훈련시간 소모와 더불어 집중도를 하락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더욱이 일부 지역에선 친한 의원끼리 방문하거나, 정당별로 나눠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는 사례도 발생하면서 ‘훈련에 대한 추진상황 보고’ 내용의 브리핑과 방문 준비를 수차례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실제 훈련기간 남양주시청 지하에 마련된 을지훈련상황실에는 2명의 지역구 국회의원이 차례로 방문했고, 시ㆍ도의원들도 정당별로 찾아와 같은 내용의 브리핑이 여러 차례 진행됐다. 이들은 경찰서와 소방서도 연이어 방문했다.

 

구리시의원들도 지난 22일 을지연습이 진행 중인 구리시청과 구리경찰서, 시 단위 실제훈련장(토평정수장), 구리소방서 등을 차례로 방문해 훈련 상황을 참관하고 기념촬영까지 시행했으며, 같은 날 용인시의회 역시 시청과 을지연습장, 경찰서, 소방서 등 지역 내 주요 기관을 방문했다. 각 기관 근무자들은 예우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정치인 방문에 응대하고 있지만,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고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시행되는 훈련인 만큼, 지휘부도 실전 같은 훈련을 강조하는 마당에 정치인들이 차례대로 찾아와 브리핑을 받고 사진까지 촬영하는 게 우스운 상황”이라며 “실제 전쟁 상황 발생 시에도 과연 정치인들이 찾아올지 의문이다. 홍보 도구로 사용하려는 구태적인 정치시각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 한 국회의원 측은 “고생하는 근무자를 격려하고 현황을 살피기 위해 방문했지만 개별적으로 방문하는 정치인들이 훈련에 임하는 공직자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사실엔 공감한다”면서 “앞으로 협의를 통해 다 같이 방문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하지은ㆍ송승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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