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는 ‘한 바구니에 계란을 담은 모습’이 종종 발견된다. 특정 지역에서 한 정당의 의회 의석 점유율이 90%를 넘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이다. 과연 그 지역 사람들의 90%가 전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매우 의심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단기적으로 일사불란함이라는 일시적 장점을 누릴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정치 독점이란 필연적으로 그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수밖에 없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알지만 엄연히 선거를 통해 나타난 결과를 어쩌라는 것이냐?”고 되묻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물론이다. 선거결과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문제 하나가 간과되고 있다. 선거제도의 문제다. 흔히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 때 위로한답시고 “사람이 속이나? 돈이 속이지”라고 말하곤 하는데,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표가 속이겠는가? 선거제도가 속이는 것”이다. 한 마디로 현행 선거제도는 정확하게 민의를 반영하는 구조가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보자. 거대정당들은 30~40%의 표만 얻고도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점유하는 반면 군소정당들은 10%대의 표를 받고서도 고작 해야 3~4%의 의석만을 갖는다. 그야말로 ‘승자독식’ 또는 ‘정치적 부익부 빈익빈’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38%의 득표율로 과반이 넘는 51%의 의석을 차지했지만, 13%를 득표했던 민주노동당은 고작 3.3%의 의석만을 차지했다. 2012년 총선에서도 42.8%를 득표한 새누리당이 51%의 의석을 점유한 것과는 달리 통합진보당은 10.3%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의석은 4.3%에 불과했다.
이처럼 현행 선거제도는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거대정당 중심의 정당체제를 고착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로 인해 다양성과 소수 의견의 보루여야 할 의회는 손쉽게 과반을 차지한 거대정당의 횡포에 휘둘리고, 견제와 균형의 민주적 원리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해 버렸다. 망국적인 지역주의는 더욱 심화하였으며, 유권자의 표심과 선거결과의 불일치에서 오는 정치 불신은 우리 사회를 더욱더 심한 대립과 갈등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작금의 시대정신이 ‘적폐청산’이라면, 정치 분야의 적폐청산을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선거제도 개혁인 까닭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비례성’의 강화다. 표를 받은 만큼 의석수가 배분되도록 하여 선거결과에 정확히 민심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표가 속이나? 선거제도가 속이지”하면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를 초청한 자리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위한 분권형 개헌 논의를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밝히면서 단 하나의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그것은 민의가 정확히 반영되는 방식으로 선거제도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정치이슈는 선거제도 개혁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권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린 일인 만큼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의 절대적이고 강력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원혜영 국회의원·정치개혁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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