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그런데다가 1959년 당시 사라호 태풍은 800여 명의 생목숨을 앗아갔고, 내 고향 경주와 포항 시내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평화롭기만 하던 마을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고, 모두들 살길이 막막하였다. 우리집에 찾아든 탁발승의 뒷모습만 보고 아무 말없이 따라나섰다. 그리고 그해 스님이 되었다.
2000년 1월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간 이식수술’을 통해 기적같이 새 생명을 얻었다. 이후 이생의 인연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 은덕을 갚으리라는 서원을 세웠으며, 2005년부터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소임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 결과 생명나눔실천본부는 사회적 명성과 함께 불교계의 상징적인 단체가 되었고, 생명나눔 문화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후 또는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 수는 이식대기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1명이 최대 9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뇌사 기증자는 전체 인구 3%대에 불과하다. 이는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앞으로 생명나눔실천본부의 자비 나눔 활동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하나의 일념 뿐이다.
경쟁 일변도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느라 오히려 감정은 메말라가고 우리의 삶도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으나 필자는 그 원인 중에 하나가 진지하게 사색하고 성찰하기보다는 당장의 즐거움과 편리함만을 좇는 사회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들에게 생명을 존중하는 성품을 길러주어야 하는데, 이를 ‘누가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자각한 사람이 필요하다.
날이 갈수록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현실이다. 인간 수명을 130살에 맞춰놓고 국가의 인구 정책을 만들고 사회제도를 새롭게 다시 손보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장기, 인체조직 등을 교체하거나 이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게 된다는 것을 방증한다. 태어날 때 부모한테 받는 신체를 가지고만은 100세 이상 장수를 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뿌리 깊은 유교문화 속에서 이만큼이나마 생명나눔의 싹을 틔우고 결실을 맺어온 생명나눔실천운동은 앞으로 지금과는 다른 좀 더 적극적으로 대중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미얀마는 미국과 더불어 기부지수 세계1위 국가라고 한다. 미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얀마는 가난한 국가라고 알고 있는데, 기부지수가 1위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도 ‘나눔과 베풂’을 조용히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유롭고 풍족한 부자들이 아니며, 알뜰살뜰 아끼고 모아서 십시일반 나누는 사람들이 더 많다. 비우고 나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부처님도 요즘 말로 하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분이다. 젊은 날에는 부유한 삶을 살았다. 왕자의 신분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난 후 깨달을 때까지는 고행을 자처하였다. 얻는 것을 좋아하고 그걸 쫓아다니다 보면 얻지 못하는 괴로움, 더 얻고 싶은 괴로움, 남보다 많이 가지기를 바라는 괴로움, 남보다 적게 갖고 있다는 괴로움만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눔과 베풂’ 같은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고, 크게 세상을 본다면 삶은 결국에는 잃어야 얻는 것이요, 버려야 얻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1994년 설립된 생명나눔실천본부는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장기기증 및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등록, 환자 치료비 지원, 자살예방센터 운영 등을 통해 많은 생명을 살리고 국민 건강과 복지를 위해 노력해 왔으나 아직도 열악하기만 하다. 우리는 언제쯤 가진 게 없어도 ‘나눔과 베풂’만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내공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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