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자로서 요즘만큼 헌법의 소중함을 절감해본 적이 없다. 제왕적 권한을 휘두르던 대통령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탄핵소추를 당하고 드디어 파면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헌법상의 제왕적 요소 등을 손보려고 국회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발족해 현재 헌법개정을 위한 지혜를 모으고 있다. 이번 개헌은 1987년 9차 개헌 후 30여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헌법학자이자 차기 한국헌법학회 회장인 필자는 많은 언론기관에서 탄핵 및 헌법개정과 관련한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가능한 한 자제해왔다. 그러나 일련의 탄핵사태와 관련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2013년 9월 헌법재판소 설립 25주년 기념 국제세미나 기념 만찬에서 중국 칭화대학교 교수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미국 Yale Law School 출신의 엘리트 교수인 그는 한국을 배우려고 이 세미나에 참석하게 됐다고 했다. 그 구체적인 이유로 중국과 동일한 유교문화권인 한국에서 왕과 같은 존재인 대통령이 탄핵소추 됐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그는 중국 같으면 이러한 일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기관의 작동원리를 규정한 국가의 기본법이자 최고법이다. 모든 국가작용은 헌법에 기초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입헌주의 원리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헌법 위에 이른바 ‘국민정서법’ 또는 ‘떼 법’이 있다고 무조건 우기는 한국의 법문화에서 헌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통적인 왕과 같은 존재였던 대통령도 탄핵에 의해 파면되는 상황을 목격했기에 이를 반면교사 삼아 이제는 국민들도 무조건 떼만 쓰면 된다는 인식을 바꿀 때가 됐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은 헌법을 자기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로 인식하고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헌법개정안 마련 작업을 하고 있고, 필자도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자문위원이기 이전에 국민의 입장에서 간곡하게 말하자면 이번 개헌작업을 집권여당이나 야당의 유불리나 당리당략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접근해 달라는 것이다. 또한 개헌작업을 내년 지방선거에 맞춰 마치 전쟁을 하듯이 속전속결로 진행하지 말고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수렴하는 방향으로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최대한 문호를 개방해 진행하길 바란다.
아울러 이번 헌법 개정 시에 현행 영토조항을 중국 및 일본과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영해를 포함한 영역조항으로 개정하고 통일에 대비해 관련 조항도 개정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개헌에 임하는 각 기관도 자기 기관의 이해관계에만 함몰되지 말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최대한 기여하는 방향으로 임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30여년 만에 모처럼 성숙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개헌이 현재의 국민과 미래세대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 성공적으로 진행돼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헌법이 되기를 간절히 희구해 본다.
고문현
숭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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