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감적호(監的壕)

1986년. ‘키가 크고 인물이 좋았던 훈련병’이 있었다. 모든 훈련에 특출했다. 제식(制式)도, 구보(驅步)도 1등이었다. 특히 사격(射擊)이 남달랐다. 20발을 쏜 1차 실사(實射)에서 20발 모두를 맞췄다. 남들이 ‘뺑뺑이’를 돌 때 감적호에 배치됐다. 동료들이 쏜 탄환의 적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깊이 파인 땅속에 몸을 숨겼다가, 사격이 끝나면 뛰어나와 표적지를 확인했다. 180명쯤 되는 중대원의 사격 점수를 그렇게 확인했다. ▶야외 실탄사격장에서 통제관의 지휘에 따라 표적을 조작하고 운영하는 병사가 감적수(監的手)다. 이 감적수의 안전을 위하여 만든 땅 구덩이가 감적호다. 소름 돋는 탄환 굉음이 스친다. 돌에 튄 탄환이 사방에서 튄다. 그런 구덩이에 훈련병을 넣어(?) 두고 표적지를 확인시켰다. 자동화 사격장이 일반화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그 훈련병의 퇴소 소감에 모두가 웃었던 기억이 있다. “훈련소에서 제일 무서웠던 때가 감적호 들어갔을 때다.” ▶1987년. 이정○ 상병. 파주시 문산읍 어느 부대 소속이었다. 그해 가을 인근 야산에서 작업하다가 실탄에 맞았다. 인접한 부대 사격장에서 날아든 총알이었다. 부대에서 그렇다고 밝혔다. 군 병원으로 이송된 뒤 곧바로 제대했고 ‘상병’은 그의 마지막 계급이 됐다. 수원 출신인 그를 몇 달 뒤 만났다. 커피숍에서 만난 그가 웃으며 말했다. “김 일병, 너 로보트 태권 브이 한번 볼래?” 걷어 올린 윗옷 사이로 ‘V’자 흉터가 끔찍하게 남아 있었다. ▶‘사격장 군기’라는 게 있다. 유독 독한 사격장에서의 군기 잡기를 일컫는 말이다. 그만큼 사격은 위험한 훈련이다. 내 실수로 죽을 수도, 남의 실수로 죽을 수도 있다. 그 시절, 혹여 사고라도 나면 그건 병사의 잘못이었다. ‘군기가 빠져서’ 발생한 사고라고 몰면 그만이었다. 총탄이 빗발치는 위험천만한 감적호에 들어갔던 ‘키 크고 인물 좋았던 훈련병’, 갑자기 날아든 총알에 가슴을 맞고 제대한 ‘이정○ 상병’. 모두 당사자 탓이라고 몰아붙였고, 그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지난달 26일 6사단에서 작업 중이던 병사가 사망했다. 군(軍)이 ‘도비탄’에 의한 사고라고 결론 냈다. 사격장 실탄이 바위 등에 맞아 ‘재수 없이’ 방향이 바뀐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유족이 항의했고 국방부 장관이 재조사를 지시했다. 그러자 군이 재수사 결과를 내놨다. 도비탄이 아니라 유탄이라고 정정했다. ‘튀어 날아온 총알’이 아니라 ‘직접 날아온 총알’이라는 것이다. 장관 지시 한 마디에 뒤바뀌어 버린 사인(死因)이다. 유족의 눈에 대한민국 군대가 어떻게 보이겠는가. 이런 군을 믿고 지금도 63만의 장병이 공포의 사대(射臺)에 오르고 있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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