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세계 전 인류가 배우고 깨달아 따르며 활용해야만 하는, 영구불변의 진리다. 결국 모든 진리는 인간들이 발견하고 깨닫고 활용하며 따라야 하는 것일 뿐, 새로이 창조하고 변경하거나 꾸미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7년 다음에는 2018년이 온다는 시간적 진리 역시, 전세계 모든 시계 제작인들과 우주 천체 물리학자들이 모여서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새로이 또 다수결로 변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리학이나 물리학이나 천문학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비물리학적인 이성과 정신세계의 형이상학, 즉 철학윤리학정치학법률학신학 등의 종교적 영역에서도, 자유를 존재가능조건으로 삼는 진리와 정의는 다수결과 무관하게 그 자체가 영구불변적이다.
그런데 오늘의 세계는 민주주의 다수결 만능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다. 특히 정치계에 있어 다수결 원칙은 성경이나 불경이나 유교의 사서삼경 이상으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존중하고 앞에 내세우며 천하의 진리인 듯, 다수결 원칙을 ‘최고의 天命(천명)’처럼, 때로는 다수결을 만들어가며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결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은 너무나 잘 모르고 있으니, 다수인들의 자유롭고 바른 양심과 건전한 상식 수준이 함량미달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조건, 즉 ‘다수결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고 있고 확인하지 않으며, 무시하고 또 소홀히 여기고 있다. 마치 언론 보도의 자유와 권리에는 사실을 사실대로 정직하고 공정하게, 공익을 위하여 보도해야만 하는 의무와 책임이 절대적인 전제 조건으로 있음과 같다.
그래서 비일비재한 소수의 폭력이나, 독재자 1인의 비민주적 폭력도 매우 두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민주적이라고 내세우는 다수결 주창자들 다수의 폭력은 소수의 폭력이나 1인 독재자의 폭력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다.
최근 우리는 다수의 폭력이 소수의 폭력보다 비할 수 없이 더 끔찍하다는 사실을, 중국의 이른바 ‘문화혁명’을 통하여 모를 수가 없게 되었고, 특히 지난 세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17년을 전후한 북유럽 각국에서도 그 비극을 세계 인류가 너무나 뼈저리게 직시하여 왔다.
그러므로 정의와 진리의 절대조건이 되는, 자유가 없는 사람들의 말과 글과 행동에는 진리와 진실이 있기 어렵고, 특히 정의가 살아있을 수 없으니, 정의가 없는 권력이나 권한 행사는 폭력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교황 베네딕도 16세 교서).
지금 우리는 이번에도 ‘휴전선의 이동으로 끝나게 되기 쉬운’, 새로운 전쟁의 전주곡이 요란하게 매일같이 울려 퍼지는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다. 남북한만의 전쟁이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중공만의 전쟁도 아니며, 더욱이 가공할 핵무기 사용의 제3차 세계대전의 출발과 동시에 종결이 될 수도 있다는, 인류 자멸의 비참한 대재앙급 천하대란의 전쟁이 임박한 듯, 많은 국민들이 참으로 불안해하며 착잡한 예감을 누를 수가 없는 모습이다.
이러한 전쟁은 인류의 고귀한 자유와 정의와 진리와 진실을 무시하고 짓밟아 버리는 비인간화 민족 집단들의 다수결을 빙자한 소수와 1인 독재자들의 오만한 폭력행위다. 따라서 비양심과 몰상식의 극소수 인간들이 외치는 원앙 소리만을 따라가도록, 광란의 집단들이 부르짖는 함성으로, 인류자멸의 대흉사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 자유를 위한 순교자들이 되고, 정의를 위한 용사들이 되어, 진리와 진실을 지키고 아끼고 가꾸어 나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야 하겠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5천여만 명의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으나, 국민들이 너무 적지 않은가?
변기영 천주교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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