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도 늘 보던 것이고, 공연도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가요프로그램이 최고의 콘텐츠라 여긴다. 동네 장터에서 늘 보던 것이 난장에서 그대로 보인다. 축제장만 따라다니는 상인들도 제법 된다. 차별성 없는 콘텐츠가 흥미를 잃게 한다. 문화산업을 이야기하면서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경우도 많다. 어느 축제는 유료관객에게만 콘텐츠를 보여주려고 축제장을 가림막으로 막았다. 궁금함이 아니라 부아가 솟는다.
주최 측은 역대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고 자랑하지만 지역 상인들은 반 토막 매출이라 불평한다. 무엇을 위한 축제일까. 몇 해 전 여름, 프랑스·프로방스 산길을 지나다 라벤더 축제가 한창인 곳을 들렀다. 광장에는 온갖 라벤더 제품을 파는 장터가 열렸고, 한쪽에선 라벤더 한 묶음씩을 내어줬다.
마을 입구에서는 헬기가 광활한 라벤더 밭을 보려는 관광객을 끊임없이 태운다. 안내소에서 지도를 나눠주는 청년은 영어로 행사를 설명하고 인근 마을 축제 일정도 알려준다. 고향에서 봉사 중인 대학생 청년이었다. 방학이지만 고향의 장학금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어 봉사 의무가 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동네 축제를 만들고 있다. 자연스럽게 자기 지역 특산물을 앞세워 동네잔치를 벌인다. 요즘 지역균형 발전이 화두다. 지역 간 경제 격차, 문화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문화의 발전이라는 또 다른 숙제를 만난다. 지역문화는 한 지역의 역사적 공동경험과 문화의 동질성, 공동체 의식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지역 커뮤니티가 인정하는 문화적인 정체성과 동질성인 셈이다. 프랑스 축제장에서 만난 대학생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곳에서 생활하더라도 고향에 대한 정체성을 계속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모여서 지역문화의 바탕이 된다.
탁월한 문화라는 비교는 이제 그만하자. 더 우수하고 덜 우수한 문화는 없다. 다름은 있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은 섣부르다. 문화의 우수성은 다양성에서 찾아야 한다. 다양한 문화자원을 풍부하게 잘 표현하는, 잘 모아두는 것이 좋은 문화다. 문화는 지역으로부터 형성돼야 한다. 큰길을 막고 아이들은 도로를 캔버스 삼아 분필로 그림 그린다. 여기저기 공연과 전시가 벌어진다.
박물관까지 가는 길에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다른 한쪽에는 다양한 먹거리판이 열린다. 박물관과 마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이 난장은 맨해튼에서 열리는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이다. 안산 ‘상록수 문화제’의 모습이기도 하다. 매년 상록수역과 최용신 기념관을 중심으로 여는 가을 잔치다. 주민과 박물관, 안산시가 함께 만드는 마을잔치다. 올해 퍼레이드와 공연, 샘골마을 놀이터, 전시장과 같은 다양한 행사가 개최됐다.
이 축제는 지역 구성원들이 함께 의논해서 준비하고 진행한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동네잔치인 셈이다. 행사의 공간인 상록수역과 최용신 기념관은 모두 교육자이자 선각자인 최용신 선생을 상징하는 곳이다. 개인을 기념하는 기념관은 동시에 샘골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역 커뮤니티의 허브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건강한 지역문화와 문화활동이 문화적 다양성을 이룬다.
경기도에는 지역 특성상 국내외에서 이주해온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다. 이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크고 작은 축제를 만들어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문화적인 강자가 되는길이 아닐까.
김상헌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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