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무릎의 사회학

강종권
강종권
프로 스포츠의 나라 미국에서 2017년 프로야구(MLB) 시즌을 마무리 해나갈 즈음에 열리기 시작한 미식축구(NFL) 구장에서 희한한 모습이 목격되었다. 경기 시작 행사 도중 국가가 연주될 때 일부 선수들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대통령의 인종차별 발언에 대한 저항의 표시였다. 그리고 이 행위에 대하여 대통령으로서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저급한 표현으로 비난하자 일부 프로야구 선수와 더 많은 미식축구 선수들이 무릎 꿇고 일파만파(一波萬波)하면서 조심스럽게 ‘무릎의 사회학’이라는 용어가 회자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무릎 꿇는 행위는 절대 강자에 대한 복종이나, 약자에 대하여 굴욕을 요구하는 표시로 이해한다. 신하가 임금에게 무릎을 꿇는 일과 땅콩 회항 사건이나 백화점의 고급 고객이 승무원이나 종업원을 무릎 꿇린 일들이 대표적인 한 예이다. 그러니 절대 강자, 그것도 세계적 강자라고 자처하는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무릎 꿇는 것은 사회학적으로 그 의미를 재해석하고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무릎의 사회학’을 거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오래전에 서독의 수상을 지냈던 빌리그란트(1969~1974)는 복종과 굴욕과 저항의 표시가 아니라 화해의 무릎을 꿇음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적이 있었다. 자국과 해외의 불편한 여론 중에 폴란드를 공식방문 중이었던 1970년 12월 7일 바르샤바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게 차가운 겨울비가 추슬추슬 내리던 대리석 바닥에 1분 40초 동안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독일에 의한 2차 세계대전의 최대 피해국의 하나였던 폴란드, 그것도 독일에 의해 최대의 희생을 치렀던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 꿇었던 그의 행위는 독일의 극우세력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는 했지만 동서냉전의 시대에 화해의 이정표를 던짐으로 새로운 세계사적 사회변동의 시발점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무릎이 이루어낸 쾌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무릎 꿇는 행위가 꼭 부정적인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어 청혼을 하거나, 어린아이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는 어른들의 ‘무릎 꿇음’에는 지울 수 없는 사랑과 배려의 아름다움도 배여 있다.

 

기독교 신앙에서 무릎 꿇는 행위는 신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 행위는 신의 뜻을 세워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고 신과 사람, 사람과 사람, 교회와 교회, 교회와 세상 사이를 화해하겠다는 평화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신 앞에 무릎 꿇은 사람을 어떤 이유로도 비난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무릎 꿇은 사람은 신의 이름으로 화해와 평화, 사랑과 배려를 선포하고 베푸는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빨강과 파랑이 서슬 퍼런 날을 세우고 있다. 남과 북이 대립하고 여당과 야당이 정쟁하고, 태극기와 촛불이 양분하여 조금도 양보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누가 먼저 굴종의 무릎을 꿇어 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먼저 화해의 무릎을 꿇어 준다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무릎을 꿇기라도 한다면,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정치적 역할이나 사회적 과제가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부끄럽지 않은 겸손의 무릎을 꿇어 줌으로 사람 살 만한 더 행복한 우리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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