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文정부 남북 협력 의지, ‘임진강 거북선’ 공동연구로

김종구 주필
김종구 주필
1972년, 이순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임진조국전쟁 때 거북선을 만들고 왜적을 바다에서 물리치는 데 공훈을 세운 애국 명장이다.’ ‘양반 지배 계급 출신의 지휘관으로 그의 애국심은 국왕과 봉건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기초한 것이다.’ 북한 사회과학원이 펴낸 ‘력사사전’의 내용이다. 이순신을 나라를 지킨 명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인민 대중을 위했던 영웅은 아니라고 비꼰다. 철저히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입각한 평가다.

1994년, 거북선은 이렇게 설명됐다. ‘1592년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 침략자들을 물리치는 바다싸움에서 그 위용을 떨친 세계 최초의 독특하고 위력 있는 철갑선이다.’ ‘우리 인민의 슬기와 재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과학기술적 재부의 하나다.’ 북한 국제방송이 방영한 ‘세계 최초의 철갑선-거북선’이라는 프로그램에서다. 거북선의 위대함을 극찬하고 있다. 이순신에서와 같은 꼬투리 잡기도 없다. 그저 민족 최고의 기술이라고 맺었다.

남북이 보는 이순신은 다르다. 서로의 이념이 씌워져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극만큼이나 멀다. 하지만, 거북선은 똑같다. 남북 모두 민족의 자긍심이라고 자랑한다.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고 자부한다. 남한이 지폐에 새겨 넣을 때, 북한도 주화ㆍ우표에 새겨 넣었다. 주목할만한 유사점이 하나 보인다. 1994년 방송에서 소개된 내용이다. ‘거북선은 1413년 임진강에서 시험해 본 성과에 기초해서 16세기에 새롭게 완성된 것이다.’

비슷한 주장이 우리에도 있다. 태종실록, 1413년의 기록이다. ‘임금이 임진도(臨津渡)를 지나다가 거북선(龜船)과 왜선(倭船)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 2년 뒤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거북선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 병조를 맡고 있던 좌대언(左代言) 탁신(卓愼)의 건의다.

이 기록이 왜 중요한지 잠깐 눈을 돌려보자. 수원화성이 1997년 세계 유산에 등재됐다. 다들 안 될 거라 했다. 전쟁으로 곳곳이 사라졌다. 아파트 빨래 걸이로 쓰인 곳도 있다. 행궁터에는 일제가 세운 병원이 있다. 100년 전통의 초등학교에 파묻힌 곳도 있다. 어디를 봐도 성곽이 아니었다. 그런데 유네스코는 인증했다. 바로 원천기술력 증빙이었다. 벽돌 하나, 기와 하나까지 기록된 설계도-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있어서였다.

거북선에 이런 증빙이 있나. 솔직해 지자. 없다. 이래서 세계 해전사가 거북선을 외면한다. 그저 전설 속 신기(神器) 정도로만 여긴다. 우리 스스로 초래한 결과다. 자료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거북선의 역사를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의 것으로만 한정했다. 그러다 보니 거북선 제작 능력이 ‘나대용’으로 특정됐고, 거북선 등장이 명종 이후로 좁혀졌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조선(造船) 기술을 십 몇 년, 한두 명의 일로 축소해 버렸다.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그 단서는 진작부터 충분했다. ‘1413년 2월 5일’이라는 날짜가 있고, ‘임진도 훈련’이라는 지역이 있고, ‘거북선(龜船)’이라는 명칭이 있다. 그 연구의 결실이 파주에 있다. 정부 외면 속에서 만들어온 결과다. 다행히 강 너머 북한에도 있는듯하다. ‘임진강이 거북선 시험 장소다’라고 자신 있게 특정한다. 만나서 같이 토론해야 한다. 우리 자료를 보여주고 북한 자료도 보자고 해야 한다. 그런 게 학술연구다.

또 다른-공조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도 있다. ‘임진강 거북선’ 연구의 끝은 재현(再現)이다. 거북선을 임진강에 띄워야 끝난다. 그런데 그 한쪽이 금도(禁渡)의 강이다. 남한도, 북한도 오갈 수 없다. 2005년, 한 번 열렸었다. 우리가 요청하자 북한이 응했다. 그 유일한 화합의 중심에도 거북선이 있었다. 서울에서 통영으로 가던 거북선에 터준 남북 협력의 물길이었다. 많은 이들이 했던 말이 남아 있다. ‘거북선이 연 물길, 통일로 가자.’

핵(核)으로 얼어붙은 남북을 풀어줄 교류라고 하지 않겠다. 학술교류를 통해 민족교류로 가자고 과장하지 않겠다. 그냥 ‘임진강 거북선’ 역사를 되살리는 협조라고만 하겠다. 한선(韓船) 기술력의 유구함을 정립하는 공조라고만 하겠다. 이것만으로도 문재인 정부의 ‘대북(對北) 협력 1호’가 될 가치는 충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김종구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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