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제헌헌법에서부터 지방자치를 규정하여 오늘날까지 왔다. 또한 구체적으로는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책임을 합리적으로 배분함으로써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기능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하였다.
말하자면 지방도 지방 나름의 권한과 책임이 있으며, 각 지방의 특색에 맞게 자치를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서울만큼은 아니더라도 서울과는 또 다른 살기 좋은 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크지 않은 국토다. 1일 생활권에 든 지는 수십 년이고 자동차가 없는 집이 별로 없다. KTX에 저가항공까지 이동수단도 다양하다. 고만고만한 나라에서 우리 국민은 왜 이리 서울만 보아야 하나.
이는 지방의 ‘힘’, 즉 권한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크고 작은 정책이나 제도들이 중앙정부의 권한 안에서 다루어진다. 즉, 손쉬운 중앙정부 주도형의 하향식 개발방식이 우리나라의 주요 성장전략이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부모가 여러 자식 가운데 한 명만 대학을 보내야 한다면 그 중 공부 잘하는 자식을 보내고 싶을 법하다. 국민의 눈치와 뭇매를 두려워하는 중앙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은 가장 효과가 확실한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잡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당시 강력한 지방분권의 실현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26일에는 학계, 관계부처 의견을 수렴해 만든 ‘자치분권 로드맵’ 초안을 공개하며 17개 시·도지사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 지방분권 혹은 지역균형발전이 그냥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반드시 추진하고 실현할 시대적 과제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분권이 현실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지방재정의 자율성’이다. 지자체가 무엇을 하려고 해도, 돈, 즉 재정적으로 불안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을 제외한 지방재정은 상황이 몹시 안 좋다. 정부가 보조하는 사업조차도 포기하는 일이 많다.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재정자립도는 지난 2003년 56.3%에서 지난해 52.5%로 하락하였다. 이 말은 그만큼 지자체들이 중앙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지자체가 재량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재정의 비중을 뜻하는 재정자주도는 지난 2003년 84.9%에서 지난해 74.2%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재정적 의존은 자연스레 자율성 박탈로 이어지는 법이다. 우리가 아무리 법으로 지방분권과 자치를 외쳐도, ‘돈’에 발목이 묶여 공허한 메아리만 울렸던 것이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지역이 만족할 재정자율성 확대 방안은 나오기가 어렵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사실상 방치되어 왔던 것이다. 지역 간 갈등만 있는 것이 아니다. 행안부와 기재부 사이의 이견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누구도 치열한 논의와 논쟁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지방분권은 지방재정 자율화 이후에 찾아온다.
이석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안양 동안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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