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가파른 길을 따라 줄지어 선 집 주인들은 전부 노인이다. 서울의 달동네들이 대개 그렇듯 이곳도 1960년대 고향을 등지고 야반도주하듯 서울로 밀려온 이방인들이 겨우 찾은 타향의 쉼터였을 것이다. 고향에서 함께 밤기차를 타고 왔을 수도, 어느 공장에선가 만났을 수도 있을 청춘남녀는 꿈을 안고 열심히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을 것이다.
자신처럼 만들지 않겠다고 아이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고 틈틈이 고향 부모님에게 용돈도 보냈을, 거창하게 말하면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을 일으킨 역군들이라고 칭송받아 마땅한 어른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불 한 채, 라면 한 박스를 받기 위해 줄서야 하는 병들고 지친 노인이다.
뚝 떨어진 기온에다 불암산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참석자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얼어붙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부인 강난희 여사, 인기 아이돌 수지 어머니이자 생명나눔실천본부 후원회장 정현숙님, 그리고 가수 장미화, 개그맨 엄용수, 지역 정치인, 자원봉사자 등 100여 명이 백사마을을 돌며 준비한 이불과 라면박스를 전달했다.
생명나눔실천본부가 해마다 연말 백사마을을 돌며 난방용품을 전달하는 행사는 십 년이 넘었다. 올해로 백사마을 행사는 끝내고 내년에는 다른 곳을 찾을 계획이다. 우리가 떠나도 지금껏 그러했던 것처럼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후원하고 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사람들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아간다.
공식 행사를 서둘러 끝내고 물품을 전달했다. 올해도 많은 분들이 찾아왔다. 다들 걷기는 물론 몸 가누기가 힘겨워 보인다. 접이식 카트를 끌고 왔는데 물품 두 개를 올리자 밀지를 못한다. 자원봉사자들 도움을 받아 겨우 움직였다. 그래도 직접 오는 분들은 그나마 건강한 편이다. 아예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그런 분들에게는 직접 찾아 건네야 한다.
자원봉사자들과 어느 집에 들어가 이불과 라면을 건네는데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94세 노모가 어제 돌아가셨다며 칠순의 아들이 눈물짓는다. 동장님이 명단에 올린 분은 아들이 아니라 그 노모인데 전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돈이 없는 아들은 집에서 장례를 모시려 했다고 한다. 주변 도움을 받아 당일 상을 치르고 정신을 차리기 전에 우리 일행을 맞은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나는 본능적으로 합장을 하고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간절히 염원하며 독송하면 돌아가신 영가(靈駕)가 좋은 곳으로 다시 태어난다. 남은 자들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위로받는다. 종교가, 수행자인 내가 세상과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크고 귀한 선물이다. 칠순의 아들도,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들도 운다.
고향을 떠나올 때나 수 십년이 지난 지금이나 여전히 춥고 힘겨운 백사마을 주민들을 내년부터 공식 후원은 하지 않아도 나의 관심과 발길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일면스님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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