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유영토건 대표, 연매출 100억… 건설현장 누비는 ‘여풍당당’

‘컨테이너 제작’ 부친 돕다가 입문
대형건설사 협력업체로 동반성장
설립 6년만에 건축분야로 사업 확장

김유진 유영토건 대표
▲ 김유진 유영토건 대표

토목ㆍ건축 전문회사인 유영토건 김유진 대표는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지만 지난 20여 년간 생계가 아닌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 어린 시절 공부를 많이 해 학자가 되겠다는 꿈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경영을 하고 있다.

 

“또래의 친구들이 대학진학을 위해 에너지를 쏟고 있을 고3 2학기, 고교 3년 내내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지만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어요.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아 1년 7개월여만 등록금 1천만 원을 만들어 수도권의 한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캠퍼스의 낭만을 즐긴 여유는 없었죠.”

 

평생 사무 업무만 보시던 아버지가 IMF가 터지기 직전 지인의 말만 믿고 컨테이너 제작 사업을 시작하며 김 대표의 인생도 바뀌었다. “며칠 경리 업무를 도와주면 된다”는 부친의 말에 출근했지만 회사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요. 무작정 1.5t 트럭을 끌고 다니며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지만 광주와 용인, 성남 일대의 물류보관 창고를 수도 없이 찾아다녔죠.”

 

김 대표는 무조건 회사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20대 초반의 여자가 트럭을 타고 와 컨테이너를 사달라고 하니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영업사원이 아닌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도 하루가 멀다고 찾아가니 문이 길이 생기더라고요.”

 

타고난 성실함과 추진력으로 10년 동안 수많은 컨테이너를 제작하고 판매한 김 대표는 회색의 컨테이너가 식상해 다른 색을 입혔다. 컨테이너 위에 지붕을 씌우고 벽면에 샌드위치 패널도 붙였다. 구멍을 뚫어 창문을 붙이니 주택은 물론, 사무실이 됐다. 지금이야 흔한 컨테이너 주택과 사무실이지만 당시만 해도 파격적이었다. 입소문을 타면서 제품이 알려지자 일반 회사는 물론, 군부대에서까지 의뢰가 왔다.

김유진 유영토건 대표
김유진 유영토건 대표

김 대표는 쉬고 싶은 생각에 회사를 정리하고 건설 안전용품으로 한눈을 팔면서는 믿었던 사람들이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모습에서 참을 수 없는 좌절감을 맛봤다고 한다. 하지만 김 대표는 안전용품을 하며 어깨너머로 배운 토목과 건축일은 현재의 유영토건을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유영토건은 설립 6년 만에 연 매출 100억 원을 달성했다. 공사가 크든 작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한번 일을 맡긴 곳에서는 다시 김 대표를 찾는다. “회사가 커지며 직원들은 물론, 직원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 역시 커졌죠. 모든 역량을 대형 건설업 협력 업체 등록에 집중했어요.” 현재는 국내 내로라 하는 대형 건설사 수 곳에 협력업체 등록,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건축분야로도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긍정의 힘을 믿는다는 김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위기였지만 그래서 기회도 있었죠.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시간을 갖고 사람을 대하다 보니 현재까지 왔습니다. 현재의 직원들과 함께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포스코를 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광주=한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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