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회담發 ‘훈풍’] 실향민 이병호(93) 할아버지 “北 아들이 눈에 밟혀…”

이산가족 상봉 제안 소식에 ‘실낱 희망’
“내 생애 마지막 소원은 부자만남” 눈물

▲ 9일 실향민인 이병호 할아버지가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 소식에 설레이는 표정으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주영민기자
▲ 9일 실향민인 이병호 할아버지가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 소식에 설레이는 표정으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주영민기자
“내 나이가 올해 93살인데 살면 얼마나 더 살 수 있겠어. 죽기 전에 북에 두고온 아들들을 만나고 싶을 뿐이야.”

 

9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남측 대표단이 설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는 소식을 들은 실향민 이병호(93)할아버지는 생전에 북에 두고온 자식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훤히 보이는 황해도 연백군 송봉면 청송리 누구지가 고향인 이 할아버지는 6·25 전쟁 시작 1년 만인 1951년 북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그는 부인 유봉식씨(92)와 당시 5살인 첫째 아들 이재일씨(72), 돌 지난 둘째 아들 이재식씨(68)를 집에 두고 잠시 인천 상황을 살피러 왔다가 67년째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이 할아버지는 “그때는 애들이 너무 어렸어. 정말 잠깐 상황만 보고 다시 돌아가려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는 곧바로 한국군에 입대, 중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른 6·25참전 용사이다.

 

헤어질 당시 다섯살과 한살이었던 아들들은 어느덧 일흔둘, 예순여덟 노인이 됐지만, 이들의 생사조차 모른다. 이 할아버지는 10년전부터서야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지만, 단 한번도 선정되지 못했다.

 

이 할아버지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이들이 먼저 가족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10년전부터서야 상봉신청을 했던 거지”라며 “하지만 이제는 내 나이면 나도 북쪽 가족을 만나야지, 그래서 늦게나마 신청을 한거야”고 말했다.

 

그는 “크게 바라는 것은 없어 내가 죽기전에 북에 있는 아들들의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은 거야”라며 “여기 있는 아들과 형제잖아. 내가 죽고 나서도 형제들끼리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할아버지는 피난 온 뒤 현재 부인인 문영자(83) 할머니를 만나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주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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