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현장에서 소방펌프차의 물이 떨어졌을 때 남은 수단은 사실상 소화전이 유일하다. 소방차가 화재 현장에 가까이 갈 수 없을 때도 소화전이 중요하다. 이곳에서 소방호스를 연결하면 불길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소화전 5m 이내는 모든 차량의 주차가 금지된다. 어기면 도로교통법에 의해 과태료 4만, 5만 원이 부과된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이 같은 규정이 있는 지도 잘 모른다. 별생각 없이 소화전 주변 아무 곳에나 불법 주정차를 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화재가 발생할 경우 소화전이 있어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형 화재 참사가 있을 때마다 불법 주차에 따른 소방차 출동 지연이 부각됐지만 그때뿐이다.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이면도로에 불법 주차한 차량들 때문에 소방차의 현장 접근이 늦어진 것도 피해를 키운 요인이었다. 2015년 1월 5명이 숨진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화재땐 거주자 우선주차구역의 소방차 진입 방해 문제가 공론화됐다. 당시 국민안전처는 소방차 진입을 어렵게 하는 거주자 우선주차구역은 해제하고, 새로 그을 때에는 소방당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불법 주차뿐 아니라 합법인 거주자 우선주차구역 역시 소방차 진입을 막고 있어 개선이 시급한데 진척은 더디다. 집 앞 주차장을 없애는 것에 반대하는 민원과 주차난을 우려해서다.
심지어 일부 자치단체에선 소화전 바로 옆에 거주자 우선주차구역을 만든 곳도 있다. 본보가 수원지역을 취재한 결과 시내 수십 곳의 거주자 우선주차구역이 소화전 바로 옆에 있다. 화재가 났을 경우 차가 주차돼 있다면 소화전 사용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소방당국은 2016년과 지난해에 모두 58개 지점에 대해 ‘소방용수시설 주변 거주자 우선주차구획 제거’를 수원시에 요청했다. 시는 일부는 제거하고, 일부는 2년이 넘도록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소방당국의 지적에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 수원시 행정은 문제가 심각하다. 소방당국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곳까지 전수조사를 통해 문제가 되는 거주자 우선주차구역은 없애야 한다.
이는 수원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상황이 비슷할 것이다. 이참에 경기도가 나서 도내 전 지자체를 대상으로 소화전을 가로막는 거주자 우선주차구역 실태조사와 함께 제거 작업에 나서야 한다. 소방차 진입을 가로막고 소화전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주차는 내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잠재적 범죄행위다. 소방당국과 지자체는 소방시설 앞 주차금지 규정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시민들이 주변의 소화전 및 송수구 위치를 확인토록 교육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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