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함께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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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말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하였다. “간사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내자”는 의미이다. 적폐청산으로 어수선했던 한 해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책상에 새겨두고 생활신조로 삼는 글이었기에 친근함이 더해지는 글이기도 했다.

 

요즘처럼 초등학교에서 슬기로운 생활을 배우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바른 생활을 가르치던 국민학교 시절이 있었다. 착한 일을 권면하고 악한 일은 반드시 징계 받는다(勸善懲惡)는 바른 생활을 배우면서 그 시절을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의 삶과 바른 생활이 괴리되어 있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인정한다. ‘파사현정’이 무의미했던 시절이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적폐청산’에 반발이 너무 심한가 보다.

 

사실 적폐청산의 목적은 보복이 아니라 함께 살자는 의미일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서로서로 어울 거리며 살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쌓여온 잘못된 폐단을 바로잡아보자는 ‘적폐(積弊)’를 빨갱이가 짖는 소리인 ‘적폐(赤吠)’ 정도로만 여겨버리니 파사현정이 소원(疏遠)할 뿐이다.

 

개가 토한 것을 먹듯이 과거의 폐습을 차단하지 못하고 계속 되풀이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가복음 2:22)는 예수의 가르침이 새삼 새롭다. 새로 담은 술을 낡은 가죽부대에 담아 발효 숙성하다가 만일 그 가죽부대가 터져버리면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새 술은 새로운 가죽부대에 담아 보관하고 숙성해야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과거의 악습과 폐단을 고치려 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시빗거리 삼고 거부하면서 고집을 부리기만 한다면 누가 그 현재를 희망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만 도는 세상살이를 재미있다고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성경의 시간관념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생긴 동그란 시계가 아니라, 사인곡선을 이룬다. 그래서 현재는 과거의 연속선상에서 현재이기는 하지만, 과거와는 완전히 구분된 새로운 현재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고 강조하였다. 과거의 율법에 얽매인 삶이 아니라 새로운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과거를 무시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현재’, ‘새로운 창조’는 함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의미들이 아닐까? 이렇게 볼 때 파사현정도 적폐청산도 살벌한 숙정(肅正)의 의미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의 이정표로 여길 수 있는 시각이 무엇보다도 필요할 때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한이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마당에 우리끼리 못할 일도 없지 않을까? 특히 희망을 품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 우리 모두에게 그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화합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겠다.

 

강종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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