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반 동안 수천억 연정 예산 챙기고
선거 6개월 남기고 ‘견제 기능 하겠다’
차라리 끝까지 연정하고 심판 받아라
3년 반 전으로 돌아가 보자.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연정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 내용이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도 예산의 상당 부분을 도의회에 할애하겠다고 했다. 도 산하기관의 장(長) 자리를 민주당 몫으로 주겠다고 했다. 가장 주목됐던 것은 정무부지사(당시 호칭)를 민주당에 넘기겠다는 거였다. 반대 의견이 나왔다. 유권자가 만들어준 견제와 균형의 틀을 깨는 반의회적 발상이라는 비난이 컸다. 도정 살림이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우려도 컸다.
연정은 그때 안 할 수 있었다. 야당 격인 도의회 민주당이 ‘안 받겠다’고 했으면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러지 않았다. 남 지사가 던진 카드를 받다 못해 더 많은 몫을 요구했다. 정무부지사(사회통합부지사) 자리를 놓고는 민주당 내부 인사들끼리 서로 하겠다며 경쟁을 벌였다. 산하단체장 자리를 두고도 ‘더 달라’는 협상을 이어갔다. 남 지사는 대부분 요구를 들어줬고, 민주당은 당초 구상보다 훨씬 커진 몫을 챙길 수 있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뜻있는 도민들의 우려를 자아냈던 건 예산 분점(分占)이다. 전국 어디에도 없는 ‘연정예산’이란 말이 경기도에 등장했다. 말은 그럴듯한데 이게 따지고 보면 ‘나눠 먹기’다. 남 지사(집행부) 예산안을 통과시켜 주는 대가로 도의회(정당)가 받아가는 대가성 거래다. 연정 예산을 딱히 정의할 수는 없다. 그 경계를 구분 짓는 것도 어렵다. 대신, 정당 스스로 연정예산이라고 표현하는 예산이 있는데 그 규모가 천문학적이다.
지난해 말 각 정당은 이렇게 밝혔다. ‘연정예산 5천298억원을 확보했습니다’(더불어민주당). ‘6개 분야, 10개 주요 사업에 연정 예산 875억원을 제안했습니다’(자유한국당). 여기에는 지역구 의원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예산도 상당수 숨어 있다. 2018년 예산만 이런 게 아니다. 2015년, 2016년, 2017년에도 천문학적 예산들이 연정예산이라는 명목으로 나눠졌다. 도 집행부 견제가 제대로 됐을 리 없다. 도민, 시민단체들이 기형적 구조라고 비난했다.
이랬던 도의회가 임기 막판에 또 한 번 욕 들을 주장을 했다. 남 지사와의 연정을 ‘그만 하자’고 제안했다. 누가 봐도 파기 선언이다. 스스로 민망해 표현을 손질했을 뿐이다. 현 도의회는 본예산을 다룰 일이 없다. 끝났다. 이런 시기에 ‘연정 그만 하자’고 선언한 것이다. 누가 봐도 계산적이지 않나. 3년 반 동안 연정의 과실은 모두 챙기고, 이제는 여당과 야당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것 아닌가. 도민들이 이렇게 말할 게 뻔하다. ‘속 보인다.’
도의회 2기 의장은 정기열 의원이다. 정 의장은 취임 직후 ‘연정 협의체’에 들어가지 않았다. 도지사, 부지사, 각 당 대표들이 다 포함됐지만, 그는 빠졌다. 그 이유에 대해 ‘도의회 수장인 나라도 연정의 틀에서 한 발 벗어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 경기도의회에서 ‘연정을 그만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다면 그건 정기열 의장뿐이다. 나머지 의원들에겐 연정 중단을 말할 자격이 없다. 차라리 계속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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