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가정에서 조부모에게 육아를 맡기는 비율이 50%가 넘는다고 한다. 교육 현장에선 ‘할머니ㆍ할아버지 학부모’를 일컫는 ‘학조부모(學祖父母)’라는 말이 쓰인다. ‘아이 입시에 성공하려면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할머니의 운전 실력’이 하나 더 추가됐다. 할머니들은 손주가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원에 데려다주는 일을 한다. 손주 교육을 위해 자기계발도 열심이다. 관련 책을 읽거나 직접 영어ㆍ수학 과외도 한다. 문화센터도 함께 다닌다. 할머니들이 젊고 학력이 높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학원가에선 학조부모 바람이 분지 오래다. 특목고 설명회를 열 때면 조부모들이 대거 참석한다. 입시 상담에 부모 대신 오는 경우도 많다. 이미 자녀를 키우며 사교육을 경험하고 입시를 겪은 사람들이라 낯선 풍경은 아니다. 사교육 업계에선 고학력을 가진 할머니ㆍ할아버지, 특히 스스로 교육 전문가라고 자신하는 교사 출신들이 학조부모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학교에선 ‘할머니 치맛바람’이 거세다. 어떤 초등학교는 딸ㆍ며느리를 대신해 녹색어머니회 교통지도에 참석하는 할머니가 많아지자 ‘할머니 봉사단’을 꾸렸다. 녹색어머니회는 말 그대로 어머니만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의있는 할머니들은 사춘기 손주를 어떻게 키울지 상담을 오거나 시험감독에 들어오기도 한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거는 할머니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일부 학조부모는 교사를 교육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고 ‘선생님은 애를 안 키워봐서 잘 모른다’는 식으로 자신의 교육관을 내세워 힘들게 한다. 할머니들의 과도한 교육열 때문에 부모들도 속앓이를 한다. 자녀의 교육 주도권을 빼앗겨 갈등도 겪는다. 아이들 또한 조부모와 부모의 교육관이 달라 혼란을 느낀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육아ㆍ교육 경험이 풍부한 학조부모는 젊은 교사나 부모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있다. 할머니들이 주도하는 교육 열풍은 ‘신(新)치맛바람’이다. 어차피 대세라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선 소통을 자주 하며 서로 신뢰를 쌓는게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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