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 격하, 역사 왜곡의 100년
과거 비틀기의 끝 보여준 본보기
20년째 전임자 죽이는 우리 정치
하지만, 권력은 스탈린에게 넘어갔다. 1924년 1월21일, 레닌이 죽은 그날이 거사 당일이었다. 불행히도 트로츠키는 요양을 가고 있었다. 그가 탄 기차로 전문이 날아들었다. ‘장례식은 토요일에 거행될 겁니다. 제시간에 돌아올 수 없으실 테니, 치료를 계속하십시오.’ 거짓말이었다. 장례식은 일요일이었다. 트로츠키를 배제하려는 전략이었다. 스탈린과 지노비예프, 카메네프-훗날 3두 정치라 표현되는-가 손잡고 벌인 희대의 역모였다.
‘트로츠키는 농민을 무시했다.’ 스탈린이 왜곡한 첫 번째 과거다. 트로츠키가 농민을 과소평가했다고 비난했다. 농업정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도 했다. 당시 러시아는 전형적인 농업국가였다. 프롤레타리아의 절대다수는 농민이었다. 이들과 트로츠키를 떼어놓는 작업이었다. 트로츠키는 시골 야노프카에서 태어났다. 혁명의 시작도 슈비고프스키라는 시골에서의 일이다. 이게 다 바뀌었다. 트로츠키는 반(反) 농민주의자가 됐다.
‘레닌과의 관계를 비틀어라.’ 트로츠키 죽이기의 결정판이다. 1905년 1차 혁명이 꼬투리가 됐다. 트로츠키가 레닌의 혁명 노선에 반발했던 시기다. 둘 사이에 있었던 유일한 갈등 시기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둘은 한 몸이었다. 그런데도, 1905년의 트로츠키만 부각했다. 레닌에 맞섰던 반혁명분자로 몰았다. 트로츠키는 자서전에서 레닌과의 추억을 비망록처럼 적고 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스탈린 생전, 그는 반레닌주의자가 됐다.
위대한 러시아 혁명에 숨겨진 추잡한 뒷모습이다. 과거를 왜곡하고 트집 잡으며 시작된 역사다.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일 수도 있다. 이념, 유산까지 모조리 뜯어고치겠다는 것이 사회주의 혁명 아닌가. 그래서였나. 소비에트 소련의 그 후 역사는 그렇게 갔다. 스탈린은 후르시초프가 부정했다. 공산당의 폐쇄성은 고르바초프가 부정했다. 옐친은 사회주의 100년을 송두리째 부정했다. 1991년, 그렇게 ‘과거 비틀기’가 끝나자 소련은 멸망했다.
그 100년, 미국은 어땠나. 트로츠키가 처음 미국 땅을 밟은 건 1917년 1월13일이다. 뉴욕에 대한 그의 감상이 이렇게 남았다. ‘거대한 빌딩군, 가스레인지, 전화, 엘리베이터…아이들이 순식간에 뉴욕의 포로가 됐다.’ 그러면서도 비꼰다. ‘달러( Doller)의 도덕 철학이 완전히 석권한 나라다’ ‘인류의 문명이 버려질 대장간이다’. 하지만, 그는 틀렸다. 100년 뒤 미국은 더 풍요로워졌다. 과거사를 부정하지도 않고, 전임자를 격하하지도 않는다.
‘과거 비틀기’의 결말은 비극이다. 세상 어떤 현재도 언젠가는 과거다. 미래에 바쳐질 예비된 제물일 뿐이다. 지금 권력이 짠 관(棺)도 미래 어떤 날은 스스로 들어갈 어둠의 상자일 뿐이다. 그 적나라한 표본을 사회주의 소련이 보여줬다. 창시자 유언이 휴지가 되고, 후계자 머리에 등산 도끼가 꽂히고, 권력자 흉상이 땅바닥에 구르고, 위대했던 혁명이 참담한 실패가 됐다. 그러면, 어떤가. 대한민국은. 소련의 100년 교훈에서 자유로운가.
김영삼 정부는 ‘5공 청산’으로 과거를 뒤졌다. 김대중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로 과거를 뒤졌다. 노무현 정부는 ‘부패 정치 척결’로 과거를 뒤졌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 수사’로 과거를 뒤졌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로 과거를 뒤졌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으로 과거를 뒤지고 있다. 어떤 대통령들은 감옥에 갔고, 어떤 대통령은 감옥에 있고, 어떤 대통령은 감옥에 갈 판이다. 20년째 이러고 있다. 불행한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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