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 구두만 100만 켤레 손질… “구두만 봐도 법원 분위기 보이죠”

수원지법 내 28년 구둣방 운영 장용호씨
90년대 딱딱한 정장 구두 일색 편안함 추구… 많이 유연해져
“20년만에 법원장으로 다시 만난 ‘윤준 판사’와 인연 감회 새로워”

▲ 장용호씨 1
▲ 26일 오전 11시께 수원지법 내에 마련된 구둣방에서 장용호씨가 법조 관계자의 구두를 닦고 있다.
“지금껏 닦아온 판ㆍ검사 구두만 100만 켤레입니다. 한 줄로 세우면 수원에서 부산도 가지요”

 

26일 오전 11시 수원지법 한켠에 마련된 작은 컨테이너. 이곳에서 만난 장용호씨(62)는 법조 관계자들의 구두를 닦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의 손톱에는 구두약이 시커멓게 껴 있었고 수십 년간 힘을 줘 구두를 닦았던 탓에 손가락 관절 곳곳이 툭툭 튀어나와있었다. 하루 100여 켤레의 구두를 닦는 장씨는 지난 1990년부터 지금까지 수원지법에서만 28년간 구두를 닦았다.

 

법원이라는 곳에서 수십 년간 구두를 닦은 장씨이기에 그가 털어놓는 구두 이야기에는 수원지법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난 1990년 첫 구두닦이를 시작할 당시 판ㆍ검사의 구두는 ‘딱딱’했다. 전형적인 정장 스타일의 묵직한 검은색 구두만 가득했다. 장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아무래도 법원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구두에도 묻어나왔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반면, 현재는 실용적이고 편안한 캐쥬얼식 구두는 물론 운동화 같은 구두도 등장하고 있다. 또 여성 법조인들이 많아지면서 여성들의 구두를 닦고 수선하는 일도 늘었다. 장씨는 “한평생 구두를 닦다 보니 구두의 유형만 봐도 법원과 검찰의 그 분위기가 읽힌다”면서 “편하고 개성 있는 구두를 볼 때마다 그만큼 법조계 분위기가 개방적이고 유연해졌다는 게 느껴진다”고 미소 지었다.

 

장씨는 윤준 수원지법 법원장과의 특별한(?) 인연도 떠올렸다. 약 25년 전 윤준 법원장이 판사로 수원지법에 부임했을 때 장씨에게 자신의 구두를 맡겼던 것. 장씨는 “모든 판사의 얼굴을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친절하고 상냥했던 윤준 법원장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다”며 “법원장으로 부임했을 때도 복도에서 직접 저를 기다려 주고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20년도 훌쩍 지나 법원장으로 다시 만나니 왠지 모를 감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반평생을 함께 해온 수원지법이지만 장씨는 곧 이곳을 떠날지도 모른다. 수원지법이 내년 3월 광교 신청사로의 이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장씨는 “그동안 수원지법에서 구두와 함께 인생을 밝게 닦았다. 아이 둘도 어엿하게 키워냈다”며 “내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수원지법이 이전한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기간 본업에 충실해 구두를 번쩍번쩍 빛나게 만들겠다”고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김승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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