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만든 상록한문학당서 만나
한문·철학 등 다양한 분야 나눠
“서로에게 배우는 순간순간이 행복”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에 있는 공부모임인 ‘상록한문학당’에는 만학을 전하는 고은영 시인(72ㆍ여)과 이를 익히는 임성복 학생(89ㆍ여)이 있다.
지난 2003년 시인으로 등단해 시집 2권과 시 100여 편을 출간한 고은영 시인은 일제강점기 한(漢)학자였던 아버지를 어릴 때부터 늘 곁에서 지켜보며 교육자의 꿈을 키워왔다.
특히 일본의 탄압 아래에서 우리말로 제자들을 가르치며 “배움이 있어야 잃어버린 나라를 찾을 수 있다”던 아버지의 말이 강하게 뇌리에 남아있던 고 시인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언젠가는 누군가를 가르쳐보고 싶다고 다짐해왔다. 그렇게 만나게 된 ‘제자’가 바로 임 할머니다.
임성복 할머니는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 전교 수석을 도맡아 하던 수재였지만 중학교가 40km 떨어진 해주에 있어 진학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다시 배움에 도전해보겠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탓에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기도 벅차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지난 1998년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상록한문학당은 ‘교육 열망’을 채워줄 수 있는 꿈의 공간이었다. 25년 전인 1993년 통장과 반장으로 인연을 맺었던 그들은 상록한문학당이 생기면서 새롭게 스승과 제자로 운명 같은 만남을 시작했다. 고 시인과 임 할머니는 문학, 한문, 시사상식,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배움을 나눴다.
고 시인은 “임 할머니는 아집이 없고 오직 배움의 열정만 가득하다. 배움엔 끝이 없다는 명제를 스스로 직접 실천하시는 분”이라면서 “이런 훌륭하신 할머님께 가르침을 드릴 수 있어 저 역시 배우는 게 많고, 지금 이 모든 순간이 행복하고 영광”이라고 미소 지었다.
이에 임 할머니는 “고 선생님(시인)을 만나 인생 제2막을 열어갈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하다”며 “평소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선생님에게 지식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도 배운 게 많았다. 훌륭한 분과 함께해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이어 이들은 “우린 나무와 새처럼 이젠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라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겐 세상 그 어떤 순간보다 소중하다”고 웃어 보였다.
수습 이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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