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학원비 범죄

2016년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잡혔다. 평범해 보이는 50대 여성이었다. 역할은 돈을 찾는 인출책이었다. 1건당 10만여 원의 돈을 받았다. 잡히기 전까지 1년여간 일을 했다. 1건당 받은 돈은 10만여 원이다. 여기까지는 흔한 보이스피싱 범죄다. 수사관들을 놀라게 한 건 남편의 직업이었다. 현직 경찰이 여성의 남편이었다. 왜 했는지 추궁하자 아이들 학원비 얘기가 나왔다. 안 그대로 어려운 살림에 아이들 학원비라도 대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십수년 전 이런 일도 있었다. 경기도 산하기관의 한 간부가 검찰에 구속됐다. 업자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동료 공무원들이 의아해했다. 평소 평판이 좋기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검찰이 언론에 혐의 내용을 공개했다.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받았다. 그런데 수신처가 공무원이 아니었다. 골프 연습장 강사였다. 자녀를 가르치는 레슨비로 지불된 것이다. 골프 특기생으로 대학을 가려는 아들을 위한 ‘학원비 대납’이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말이 있었다. ‘공무원이 첩이나 도박에 빠지면 뇌물을 받는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가 그랬다. ‘첩 살림’을 챙기거나, ‘도박 자금’을 충당하려고 검은돈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2000년대 들어 확연히 바뀌었다. ‘자녀 학원비’가 범죄의 출발로 등장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경기북부경찰청이 검거한 50대 여성도, 수원지검이 구속한 경기도 공무원도 모두 그런 경우였다. 꼭 그래야 했을까. ▶5일 통계청이 주목되는 자료를 냈다. 소득에 따른 학원비 지출 비교다. 상위 20%(5분위) 가구의 월평균 ‘학생학원 교육비’는 24만2천600원이다. 하위 20%(1분위) 가구는 8천925원이다. 27배의 차이가 난다. 전체 소비지출 차이는 많이 다르다. 상위 20% 가구가 433만원, 하위 20% 가구가 115만원이다. 3.8배 차이밖에 안 된다. ‘있는 집’과 ‘없는 집’의 가장 큰 차이가 교육비다. 갈수록 심해지는 교육 양극화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최익현은 악의 축이다. 뇌물 먹다 들켜 공무원에서 잘렸다. 폭력 조직과 결탁해 도박장 돈을 챙겼다. 검사까지 매수하는 수단까지 부렸다. 그런 최익현에게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그렇게 번 돈으로 키운 아들이 검사가 됐다. 어쩌면 이게 현실일 수 있다. 돈 없으면 아이도 못 가르치고, 그러니 검은돈이라도 챙기려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위안 삼을지 모른다. ‘다 아이를 위한 부모의 사랑이다’라고.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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