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현상은 미래가 불확실하며 사회적 낙오자로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타인보다 우월해야 하며 끊임없는 성과 결과를 요구하는 사회가 구성원들을 한계치까지 몰아세우므로 인해 타인에 대한 수용 등은 존재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너와 나의 통합이나 타인을 수용하며 함께 살아가자는 목소리는 공허하게 울릴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이런 사회가 된 것은 경제발전과 개발논리로 정리되는 정치와 경제가 우리 사회를 결과논리로 지배했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한 광고의 구호가 돈버세요~ 였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광고내용이었지만, 그런 구호가 버젓이 광고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경제가 아니면 어떤 논의도 힘을 얻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1인당 GDP는 선진국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부족해서 갈구하며 사는 세상이 된 것은 여전히 결과논리로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우리 삶의 밸런스가 깨진 상태로 우리 삶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상태로 우리 삶이 지속된다면 우리 스스로 삶 자체를 망가트리며 사회를 망가트릴 수 있다.
유엔은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 경제와 사회와 더불어 문화적 권리를 규정했다. 문화활동을 통해 사회적 갈등 해소와 소통과 통합, 수용 등의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문화권리가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1966, 12, 16) 유엔은 단순히 문화활동을 소비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민주주의의 개념처럼 문화소비자에서 벗어나 문화예술의 주체로 참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우리 자신의 문화권리를 통해 문화예술의 주체로 참여한다면 사회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문화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행사하게 되면 점진적으로 내 삶의 풍경이 바뀔 것이며,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다.
이제 시민 스스로 문화권리의 주체로서 문화예술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시민 스스로 문화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 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문화의 자주적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일반 시민들의 문화의 자주적 역량은 문화예술로의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화예술을 통해 일반 시민이 문화권리의 주체이자 문화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화사회를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 사회는 통합과 수용의 가치가 작용되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곽경전 前 부평구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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