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청소, 음식 준비, 설거지 같은 가사노동은 일인데 일 취급을 못 받았다. 노동력은 쓰이는데 유상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일로 보지 않았다. 전업주부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됐고, 임금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GDP는 시장에서 화폐가치로 거래되는 후생 수준과 생산적 활동만 계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맞벌이 가구의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 41분, 여성 3시간13분으로 조사된 바 있다(2014년 생활시간조사). 가사노동은 ‘부불(否拂)노동(unpaid labor)’ 또는 ‘그림자 노동(shadow work)’으로 불린다. 미국 여성사회학자 낸시 초도로우는 ‘어머니노릇의 재생산’이란 책에서 이를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날카롭게 비판했다.
가사노동은 누군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적이고 유용한 것임에도 ‘어머니다움’이란 오도된 인식이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고 했다. 그 잉여의 몫은 철저히 남성들이 나눠 갖는다고 지적했다. 남성의 노동은 가치있는 경제적 투입 요소로 인정받는 반면 아이 돌보기를 포함한 여성의 가정 일은 모성으로 포장돼 억압 수단으로 간주됐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이 가격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주로 담당해온 가사노동이 모성 또는 가족애라는 이름 하에 값어치가 매겨지지 못하고 소외돼 왔던 게 사실이다. 맞벌이 가정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가사 및 아이 돌봄 노동 시간은 여성이 5배나 많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정년도 없어 죽을 때까지 일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직장을 다녀도, 은퇴를 해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많은 주부들이 ‘가사노동은 정년이 없는가’라는 탄식을 한다.
정부가 가족을 위해 ‘무급’으로 하는 가사노동의 값을 측정해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통계지표를 개발한다. 여성가족부가 제3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16~2020)을 통해 ‘가계생산 위성계정’을 개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화폐적으로 측량해 양성평등한 가족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가사노동의 성별 분업 실태를 조사하고, 평등한 가사분담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가족평등지수’를 만드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번 조치는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가사노동의 값을 처음으로 공식화함으로써 사회 정의를 확보하고, 가정 내 불평등을 완화하는 의미가 있다. 가사노동이 제대로 평가돼 값어치를 인정받고,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도 확산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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