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갈등 부르고 효율성 없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ㆍ수도권에 있는 122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추진을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대표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중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이전 대상이 되는 122개 기관은 적합한 지역을 선정해 옮겨가도록 당정 간에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서울과 수도권은 과밀화의 고통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지방은 소멸론의 위기감 속에 정체돼 있다”며 “참여정부에서 시작된 혁신도시 건설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에 이어 또다시 공공기관 이전 논란으로 갈등이 일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 이후 혁신도시로 선정된 전국 10곳에 공공기관 153개를 이전했다. 지역균형발전이란 긍정적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역 갈등이 생기고 여러 문제점이 나타났다. 공공기관이 떠난 지역에선 일자리와 인구가 줄어 지역 경기가 악화됐고, 지방에선 규모가 더 큰 공공기관 유치를 위한 지역간 다툼이 벌어졌다. 지방으로 옮긴 공공기관에선 많은 직원이 이탈하고, 업무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때문에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들어 공공기관 이전 속도가 더뎌졌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는 대통령령이 정한 기관이 단계적으로 지방 이전 계획을 만들도록 했는데, 이·박 정부는 노 정부 때 만들어진 이전 계획은 이행했지만 부작용이 심하다며 새로운 이전 계획은 수립하지 않았다. 이미 지방 이전을 완료한 많은 공공기관에서 업무 비효율성을 호소했다. 중앙 부처나 국회 관련 업무가 잦은 고위직 등은 서울을 오가느라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였고, 지방 사무실은 거의 비어 있었다. 지방 이전한 기관의 직원들은 55.4%가 ‘나홀로 이주’여서 가족간 해체를 부추기고 삶의 질도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 이 대표가 또다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노무현 정부 때처럼 해당기관 직원 및 지역주민 반발, 중앙과 지방 갈등, 지역 간 갈등, 극심한 정치적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우려된다. 고용·경제 등 정부 위기 상황을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통해 돌파하려는 국면 전환용 정치적 꼼수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이번에 지방 이전 대상 기관은 산업은행ㆍ기업은행ㆍKOTRAㆍ한국공항공사 등 서울 99곳, 한국마사회ㆍ지역난방공사ㆍ한국에너지공단ㆍ한국국제협력단 등 경기 18곳, 인천 3곳 등이다. 근무 인원만 5만8천여 명에 이른다. 당정은 5일 일괄 이전에 논란이 일자 ‘산은기은은 제외’라며 대상기관 분류검토에 착수했다.

갈등만 불러오고 효율성도 떨어지는 공공기관 이전을 당정이 강행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지방경제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정책은 수도권 죽이기가 아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수도권을 죽이고서도 지방을 못 살리는 것처럼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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