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명절 좀 없애주세요”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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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구인구직이 추석을 앞두고 직장인 7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3.1%가 ‘명절 연휴 출근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56.4%)이 남성(47.3%)보다 더, 기혼자(53.5%)가 미혼자(51.4%)보다 더 명절 연휴 출근 의지가 강했다. 출근을 원하는 이유는 ‘명절 음식 등 집안일 스트레스 때문에’(32.5%)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어 ‘지출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29.1%), ‘가족 모임의 부담감’(26.7%), ‘연휴후 밀려있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9.7%) 등의 순이었다. 집안일 스트레스와 경제적 부담 등 ‘명절 증후군’ 때문이다.

여성들의 스트레스는 차례상 준비부터 시작된다. 많은 양의 음식을 하다보니 재료 구입부터 요리, 그리고 먹고 치우기까지 부엌일이 끊이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린다. 남성들은 지출 스트레스에 한숨 짓는다. 양가 부모님과 조카들 용돈, 주변 사람 선물까지 챙겨야 하니 그렇잖아도 얄팍한 지갑이 구멍날까 걱정이 많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명절을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설에도 ‘제사를 없애달라’ ‘명절 연휴를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이어졌는데 추석을 앞두고 또다시 올라오고 있다. 명절 스트레스가 심하고 의미도 퇴색했으니 줄이거나 없애자는게 주요 내용이다. 한 청원자는 “현대사회에 더는 추석이 의미가 없다”는 이유로 폐지를 요청했다. “한가위는 농경사회에서 한 해 동안 지은 농사의 결과에 감사를 표하는 명절”이라며 “농사 짓는 집이 드문 요즘은 추석이 예전같은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 모임은 설 연휴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명절이 가족 화합을 해친다는 이들도 많았다. 가부장적 요소가 남아있는 명절 풍습 때문에 부부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명절 전후로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결과도 있고, ‘명절 이혼’이란 말도 생겼다. 2016년 기준, 설과 추석 연휴 전후로 하루 평균 577건의 이혼신청서가 접수됐다. 다른 달의 하루 평균 2배 수준으로 연간 이혼의 20%가 이때 집중된다.

갈등과 스트레스는 부부, 기혼자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미혼의 경우 결혼, 출산, 취업, 학업성적 등의 ‘잔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만나는 사람 있냐’ ‘언제 결혼할거냐’ ‘취업이 안돼서 어떻하냐’ 등의 얘기가 짜증 나 친척들을 보고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명절 좀 없애주세요”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하고 있다. 가족ㆍ친지들이 모여 화목을 다지고 즐거워야 할 명절이 ‘폐지’ 청원 대상이 되다니, 명절도 참 안됐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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