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추석 제사와 가족 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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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점점 익어간다. 누런 황금 들판의 저녁과 붉은 노을이 얼마나 인상 깊었으면 가을 저녁을 조상님들께 감사드리는 날로 삼고, 음력 8월 보름을 추석(秋夕)이라 했을까?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결실의 계절이다. 현재의 이 풍성한 가을을 감사하면서, 집집마다 가족들이 모여서 나와 우리 형제·자매들을 낳고 기르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 어머니와 아버지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그리워하며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곧 다가올 겨울에는 무서운 추위가 찾아오고, 온갖 작물들은 스스로 생명의 기운을 감추고 깊게 잠들어 쉬기를 요청받는다. 그래서 가을에서 가을만을 느끼는 것은 가을을 온전히 다 느끼는 것이 아니다. 가을에서 지난 여름과 다가올 겨울과 봄 그리고 새로운 여름을 함께 느끼는 것이 이 가을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곡물 하나하나에서 지난 여름의 뙤약볕과 불타는 땅의 목마름과 또 그 속에서 이따금씩 내리는 하늘의 빗줄기와 농부의 땀방울이 아로 새겨진 것을 모두 볼 수 있는가? 우리가 보는 그 곡물 안에 이와 같이 우주적 연기법(緣起法)에 따른 전체 우주가 수렴되어 있는 것이다. 수많은 그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각각 각자의 인생을 살아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아들들과 딸들이 또 각자 살아갈 것이다. 그 각자들은 각자들이면서 과거의 조상과 미래의 후손들이 모두 함께 수렴되어 있는 것이다.

 

제사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을 기리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동시에 자신과 자녀들을 그리워하고 기리고 살리는 것이다. 내 안에는 조상님들의 흔적과 유전자들을 담고 있고, 또 후손들에게 그것들이 전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는 조상에게 지내는 것으로만 이해될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자신과 후손들을 함께 돌보는 것이다. 나의 흔적과 유전자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어머니들과 아버지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의 공통 유산이다. 제사를 그만두자거나 생략하자거나 하는 어떤 가족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얼마나 외로운지를 드러내는 외침이다. 그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가족들 사이에 있는 어색함과 불편함 그래서 점점 멀어져가는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때 더욱 필요한 것은 가족 간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배려다. 풍요로운 가을이 메마른 가을로 변해가는 것은 가을이 풍요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족의 사랑과 존경 그리고 배려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뜻이다. 제사지내기를 꺼리는 것은 거기 행복과 감사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소리다.

가을에는 주위의 가족들을 더욱 사랑하고 배려하며 감사하자. 그것이 조상을 기리는 제사다. 그것이 자녀를 잘 기르는 교육이다.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자기 사랑이다. 자기 사랑이, 가족 사랑이고, 조상 사랑이고, 자녀 사랑이다. 가을 한계절에 사계절을 모두 보고 온전히 느끼는 것처럼, 주변의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 속에서 곧 조상을 기리며 자신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것을 다 보아야 할 것이다. 가족의 행복이 곧 조상을 기리는 제사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다.

 

김원명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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