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평화상은 전쟁 성범죄의 잔혹성을 알리고 피해자를 돕는데 앞장선 인물 2명에게 돌아갔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의사 데니스 무퀘게(63)와 이라크 소수민족 야디지족 여성 인권운동가 나디아 무라드(25)가 영예의 수상자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은 전쟁과 무력분쟁의 무기로서 성폭력을 사용하는 일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노력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무퀘게는 콩고 동부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던 평범한 의사였다. 내전 중이던 1998년 ‘판지(Panzi) 병원’을 세워 생식기와 허벅지 등에 총상을 입은 많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치료해왔다. 이때부터 무퀘게는 전쟁 중 여성 피해자들을 치료하고 재활을 돕는 일에 일생을 바치고 있다. 피해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기술을 가르치고 법률 조언을 해줬다. 숙소, 심리 상담, 직업 훈련, 교육 등도 지원했다. 무케게는 2012년 9월 유엔 연설에서 성폭력을 자행하는 무장세력을 척결하는데 국제사회가 나서야 하고, 콩고 내전을 끝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행보에 무장세력으로부터 습격을 받는 등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무케게는 2016년 서울평화상, 2008년 유엔인권상, 2014년 사하로프 인권상을 받았다.
무라드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성노예 피해자다. 21세였던 2014년 IS 대원들에게 납치돼 3개월간 집단 성폭행과 고문, 구타를 당했다. 이후 가까스로 탈출해 전세계에 IS의 성폭력 만행을 고발했다.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그는 2015년 9월 민족학살 혐의로 IS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했다. 2016년엔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인신매매 생존자 존엄성’을 위한 첫 친선대사로 임명됐다. 2017년엔 자서전 ‘마지막 소녀(The Last Girl)’를 펴내며 “나는 세계에서 나같은 일을 겪은 마지막 소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무라드는 유럽평의회 인권상과 사하로프 인권상 등을 받았다.
전쟁 중 여성들이 성폭행 당하는 일은 빈번하다. 성폭력은 인간을 철저히 파괴하고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준다. 하지만 국제사회 및 각국 정부의 해결 노력은 미흡하다. 개인이 하기엔 역부족이지만, 무퀘게와 무라드가 이를 해왔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수난을 당했던 한국에 이번 노벨평화상은 각별하다. 무퀘게는 7일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일본을 비롯한 세계인에게는 성폭력과 맞설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 가해국인 일본을 언급한 것은 의미가 크다. 전쟁 중 성폭력을 제도화했던 일본의 진정한 반성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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