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의 역사적 고전 ‘노예로 가는 길(The Road to Serfdom)이란 책이 있다. 번역에 따라 ‘노예(奴隸)로의 길’이니 ‘예종(隸從)의 길’로 번역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는 관리경제는 소수 정책결정자에 의해 독재화하고, 국민은 자유와 번영은커녕 모든 것을 정부에 매달려야 하는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내용이다.
발간된 지 70년도 더 된 이 책이 요즘 가슴을 친다. 약자를 위한다는 선의의 정책이 시장 원리를 무시하면 약자를 괴롭히고 결국은 파멸로 몰아넣게 된다는 예언이 섬뜩하다. 하이에크는 ‘인간은 구조적으로 무지하다’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가진 불완전한 인지 구조에 따라 세계를 해석하고 지식을 획득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요즘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확증편향이다.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심각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국민경제 자문위 김광두 부의장은 현재 우리 경제는 투자가 죽어가고 있고 잠재력과 산업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 정부는 약자를 위한다는 이념과 명분으로 ‘나눠주는 시혜(施惠)’를 담보로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소득, 연금 등 모든 것을 정부에 의존하는 노예로 만들고 있다. 보통 일이 아니다. 하이에크의 경고가 현실로 되고 있다. 특정한 이념에 사로잡힌 경제정책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분배의 원천이 되는 생산과 투자 없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IMF(국제통화기금)는 9일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을 2.8%로 전망했다. 내년에는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3.7%인 것에 비해 급속한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진단이 정확해야 해결책이 나오는데 이념·통계 논쟁만 반복하고 있다. 몇 달만 기다리면 좋아진다는데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답답할 뿐이다. 경제 곳곳에 요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실업자가 8개월째 100만 명을 넘고 취업자 수 증가 폭이 두 달 연속 5천 명 이하로 떨어지는 고용참사가 빚어지고 있다. 청와대 김수현 사회수석의 주도로 보유세 인상과 다주택자 금융규제를 주 내용으로 하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으나 효과는 미지수다. 이미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정책도 너무 많다. 여덟번째 내놓는 부동산 정책, 일자리 안정자금 증액, 근로 장려금 지원 확대, 차등 적용이 빠진 최저 임금 대책 등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국민의 생존을 검증되지 않은 실험에 맡겨선 안 된다. 현장의 위기에서 해법을 찾기 바란다. 하이에크가 경고한 노예로 가는 길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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