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산악인들이 끊임없이 ‘신들의 산’ 히말라야에 오른다. 히말라야는 8천848m의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천m 봉우리 14개가 모여있는 산맥이다. 19세기부터 히말라야를 향한 탐험가들의 도전이 본격 시작됐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네팔이 문호를 개방해 히말라야 등반이 활발해졌다. 한국의 많은 산악인들도 히말라야 봉우리 정상에 올라 태극기를 휘날렸다.
엄홍길 대장은 1985년 히말라야에 처음 오른 후 22년 동안 38번의 도전을 했다. 엄 대장과 후배 산악인 박무택은 2000년 칸첸중가와 K2, 2001년 시샤팡마, 2002년 에베레스트까지 히말라야 4좌를 등반하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박무택은 이후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하다 조난을 당해 히말라야에 묻혔고, 2005년 엄 대장은 박무택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휴먼원정대를 꾸려 8천750m 에베레스트 데스존으로 등반에 나섰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2015년 개봉한 영화가 ‘히말라야’다.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엄 대장과 휴먼원정대의 순수한 도전, 산 사나이들의 뜨거운 우정이 감동을 안겼다.
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했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우리 산악인들이 90여 명에 이른다. 한국 원정대의 첫 조난 사고는, 1971년 5월 김기섭 대원이 마나슬루 7천600m 지점에서 캠프 설치 중 돌풍을 만나 40m 빙벽 아래로 떨어져 사망한 것이다. 이듬해인 1972년 김 대원을 떠나보낸 김정섭·호섭 형제는 다시 마나슬루 등정에 나섰고, 대원 6명과 셰르파 12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6천500m에 캠프를 차렸다가 눈사태를 만나 15명이 숨지는 참사를 당했다. 한국 히말라야 등반의 개척자였던 김정섭·기섭·호섭 형제가 모두 히말라야에 잠들었다.
한국인 여성 최초로 1993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던 지현옥 대장도 1999년 안나푸르나에 오른 뒤 히말라야에서 영면했다. 여성으로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고미영 대장도 2009년 낭가파르밧(8천125m)을 등정하고 하산하다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199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박영석 대장도 2011년 히말라야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등정에 빛나는 김창호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지난 13일 다울라기리산 구르자히말(7천193m) 원정 도중 베이스캠프에서 눈 폭풍에 휩쓸려 사망했다. 이 사고로 김 대장을 비롯해 영화 ‘히말라야’ 특수촬영을 맡았던 산악영화 전문 임일진 감독 등 한국인 원정대원 5명과 네팔 가이드 4명이 숨졌다. 누구보다 산을 사랑한, 그래서 결국 산이 된 사람들. 히말라야 품안에서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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